메인 페이지 본문 시작
산악정보_전국
산악정보_전국
- 국내에 있는 산이름, 높이 정보 수집, 생산
산림자원관리
데이터 제공 포맷
shp / zip데이터 제공 방식
다운로드데이터 파일 용량
754.00 KB
데이터 기본 이용료
₩ 5,000,000
조회수 2965 / 다운수 110
3
데이터 상품 정보 |
---|
■ 상품 설명 및 특징
- 국내에 있는 산 관련 정보(과거산코드, 신규산코드, 산한글명, 산한문명, 별칭내용, 산높이, 도명, 시명, 법정동명, 리명, 개요내용, 역사내용, 유래전설내용, 주변관광지명, 주변관광지설명, 문화재명, 문화재설명, 명소명, 명소설명, 추천코스내용, 관리주체명) 수집, 생산
■ 기간 및 범위
- 지역 : 전국
■ 컬럼(속성) 정보
- 산코드(구) : 산코드 구버전
- 산코드(신) : 산코드 신버전
- 산이름(한글) : 산이름
- 산이름(한문) : 산이름(한문)
- 별칭내용
- 산높이
- 도 : 산이 위치하고 있는 도명
- 시 : 산이 위치하고 있는 시명
- 법정동명 : 산이 위치하고 있는 법정동명
- 리 : 산이 위치하고 있는 리명
- 개요
- 역사
- 유래, 전설
- 관광지명
- 관광지 설명
- 문화재명
- 문화재 설명
- 명소 명
- 명소 설명
- 추천코스 내용
- 관리주체명 : 관리기관 명
- 관리주체 전화번호 : 관리기관의 전화번호
- 매설년도내용
- 재질내용
- 상태내용
■ 활용 예제
- 본 데이터 상품을 활용하여 사용자는 다음과 같은 정보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1) 산정보를 활용하여 산의 특성등을 파악 및 활용 가능
|
데이터 키워드 |
---|
산정보, 전국, 산주소, 해발고, 산높이, 산악정보 데이터 |
판매제공처 | 데이터 등록일 | 데이터 수정일 | 데이터 이용기한 |
---|---|---|---|
㈜우림엔알 | 2019-12-31 | 2023-04-17 | 20191115 ~ 20251231 |
상품 구분 | 데이터 배포 주기 | 데이터 제공 포맷/압축 포맷 | 데이터 제공 방식 | 데이터 파일 용량 |
---|---|---|---|---|
dataset | 1년 | shp/zip | 다운로드 | 754.00 KB |
과거산코드 | 신규산코드 | 산한글명 | 산한문명 | 별칭내용 | 산높이 | 도명 | 시명 | 법정동명 | 리명 | 개요내용 | 역사내용 | 유래전설내용 | 주변관광지명 | 주변관광지설명 | 문화재명 | 문화재설명 | 명소명 | 명소설명 | 추천코스내용 | 관리주체명 | 관리주체전화번호 | 매설년도내용 | 재질내용 | 상태내용 | ||||||||||||||
1101160100,116800100,대모산,大母山,( - ),292,서울특별시,강남구,일원본동,,산이라고 하기에는 염치가 없을 정도로 나지막한 높이의 대모산은 서울시 강남구에 있다. 예전에는 국수봉이라고도 불렸는데 언제부터 대모산으로 부르게 되었는지 확실치 않다. | ||||||||||||||||||||||||||||||||||||||
서울 변두리에 자리 잡고 있어 잊히다시피 한 산이었으나 인근에 아파트가 들어선 후로는 시민들의 휴식처의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이른 아침 가벼운 산책을 하려는 시민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고 주말이면 많은 사람이 이곳에 나와 도심의 찌든 때를 씻는다. | ||||||||||||||||||||||||||||||||||||||
이 산의 남쪽 기슭에는 헌인릉이 있어 둘러볼 만한데 헌인릉이란 조선 3대 태종과 그 왕비의 능침인 헌릉과 제23대 순조와 그 왕비의 능침인 인릉을 합쳐서 부르는 이름이다. | ( - ) | 산 모양이 늙은 할미 같다 하여 할미산 또는 대구산(大枯山)으로 불리다가 조선 태종의 헌릉이 자리하면서 어명에 의해 대모산(大母山)으로 부르게 됨. 산 모양이 여승의 앉은 모습과 같다 하여 대모산(大母山)이라 함. 구룡산 봉우리와 더불어 여성의 앞가슴 모양과 같다 하여 대모산(大母山)이라 함. | ( - ) | ( - ) | ( - ) | ( - ) | 우수경관 조망 명소 | ( - ) | ( - ) | 강남구청 | 02-3423-5114 | ( - ) | ( - ) | ( - ) | ||||||||||||||||||||||||
1102100100 | 117400100 | 성산봉 | 聖山峰 | ( - ) | - | 서울특별시 | 강동구 | 명일제2동 | ( - ) | ( - ) | 옛날 삼학사(三學士)가 이 산에서 수도하여 성인 셋이 나왔다는 의미로 성삼봉(聖三峰)이라 부름.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강동구청 | 02-3425-5000 | ( - ) | ( - ) | ( - ) | |||||||||||||||
1102110200 | 117400200 | 응봉 | 鷹峰 | ( - ) | - | 서울특별시 | 강동구 | 암사제3동 | ( - ) | ( - ) | 도선승의 풍수설에 의하여 산형이 매가 나는 형상이라 하여 응봉이라 부르고 한자로는 응봉이지만 지방인들이 매봉이라 부름.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강동구청 | 02-3425-5000 | ( - ) | ( - ) | ( - ) | |||||||||||||||
1102990300 | 117400300 | 일자산 | 一字山 | ( - ) | 155 | 서울특별시 | 강동구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강동구청 | 02-3425-5000 | ( - ) | ( - ) | ( - ) | ||||||||||||||||
1103030100 | 113050100 | 북한산(백운대) | 北漢山(白雲臺) | ( - ) | 837 | 서울특별시 | 강북구 | 수유동 | 서울의 진산 북한산은 조선조 초기에는 삼각산(三角山)으로 불렀다. 삼각산이란 이름은 〈신증동국여지승람〉에 '삼각산은 양주의 경계에 있다. 일명 화산(華山)이라 하고, 신라 시대에는 부아악(負兒岳)이라고 불렀다. 이 산은 경성(京城)의 진산으로 동명왕의 아들 온조가 한산(漢山)에 이르러 부아악에 올라가서 살 만한 곳을 살폈다'는 기록이 있으며, '백운봉(白雲峰, 지금의 백운대), 인수봉(仁壽峰), 만경봉(萬景峰, 지금의 만경대) 등 세 봉우리가 있으므로 그렇게 이름한 것이다'라고 유래를 기록하고 있다. 북한산성에 대해서는 〈신증동국여지승람〉과 〈북한지〉에 상세히 기록되어 있다. 북한산성은 백제 온조왕이 터를 잡았고 그 후 개루왕 때 성터를 쌓았다는 기록이 있으며, 조선 시대에 임진왜란, 병자호란을 치른 뒤 숙종 37년(1711년)에 시작하여, 6개월 만인 그해 10월에 완공하였다 한다. 북한산성은 험한 산세를 이용하여 정상을 기점으로 서쪽 산자락부터 원효봉, 염초봉, 백운대, 만경대, 용암봉, 문수봉, 나한봉, 나월봉, 용출봉, 의상봉까지 연결하여 쌓은 산성으로 총 길이가 10km에 달한다. 당시 산성에는 14개의 성문을 냈는데, 산성의 정문 격인 대서문을 중심으로 북쪽으로 수문, 서암문(시구문), 북문, 백운대를 지나 위문, 용암문, 대동문, 보국문, 대성문, 대남문, 청수동암문, 대서문에서 북서쪽으로 이어지는 산성에는, 부황 동암문, 가사동암문이 설치되었다. 현재는 대부분 성문을 복원하였다. 북한산에 수많은 등산로 거미줄 같이 엉켜 있어 산행 시 주의할 필요가 있는 곳이다. 북한산의 산행 들머리는 대표적으로 여섯 군데를 꼽고 있다. 우이동 기점, 4.19탑 기점, 정릉 기점, 세검정 기점, 불광동 기점, 구파발 북한산성 기점으로 구분할 수 있다.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강북구청 | 02-901-6114 | ( - ) | ( - ) | ( - ) | |||||||||||||||
1104140100 | 115000100 | 개화산 | 開花山 | ( - ) | 128 | 서울특별시 | 강서구 | 방화제3동 | 김포공항 옆에 있는 개화산은 높이 131.2m, 면적은 약 386.500㎡이다. 정상에는 조선 시대에 사용했다는 봉화 터가 남아 있다. 또한, 고려 시대에 세워진 사찰 두 개가 있다. 꽃이 피는 형상 같은 지형을 가지고 있다. | 신라 시대에 주룡 선생이라는 도인이 살아서 주룡산이라고 불리다가, 그가 돌아간 후에 그 자리에서 이상한 꽃이 피었다고 하여 개화산이라 일컬었다는 이야기가 있다. 또 산정상의 봉화대에서 그 의미를 취하여 불화(火)자를 써서 개화산(開火山)이라 하였다가 그 후에 개화산(開花山)이라고 했다는 견해도 있다. | 전설에 의하면 용이 지나가다가 이 산에 머물렀다 하여 주룡산이라 부르다가 약 240년 전에 이 산에서 꽃이 피어 동쪽으로 날려서 어느 곳에 떨어졌다는 것으로 모여들어 산형을 꽃피는 형이라 하여 개화산이라 부름. | ( - ) | ( - ) | 약사사 3층 석탑, 풍산 심 씨 묘역 | 1약사사 3층 석탑 : 단층기단 위에 화강석으로 축조한 4m 높이의 3층 탑. 정상부근 약사사 경내에 위치함.; 2풍산 심 씨 묘역 : 풍산 심 씨 가문의 분묘 약 50여 기 그중 문화재적 가치가 있는 4분의 분묘와 그에 딸린 묘비, 상석 등을 문화재로 지정, 보호하고 있다. | 방화 근린공원, 김포지구 전투기념비 | ( - ) | ( - ) | 강서구청 | 02-2600-6114 | ( - ) | ( - ) | ( - ) | |||||||||||||||
1104150200 | 115000200 | 궁산 | 宮山 | ( - ) | 74 | 서울특별시 | 강서구 | 가양제1동 | 궁산은 궁산이란 이름 외에 파산, 성산, 진산, 관산 등의 이름을 가지고 있다. 백제의 옛날 고성지가 있었으며, 조선조 화가인 겸재 정선이 양천 현령으로 재임하면서 그림을 그렸던 소악루가 있고 오랜 세월 동안 인물을 배출한 양천 향교가 있다. 임진왜란 때 의병의 집결장소였으며, 조선 시대에는 우리 고장의 행정 중심지였다. 한강과 마주하고 있으며 북쪽으론 경사가 가파르며 남쪽으로는 완만하다. 정상 부근엔 평지가 있고 한강 전경을 볼 수 있는 조망소도 있다. | 궁산은 궁산이란 이름 외에 파산, 성산, 진산, 관산 등의 이름을 가지고 있다. 백제의 옛날 고성지가 있었으며, 조선조 화가인 겸재 정선이 양천 현령으로 재임하면서 그림을 그렸던 소악루가 있고 오랜 세월 동안 인물을 배출한 양천 향교가 있다. 임진왜란 때 의병의 집결장소였으며, 조선 시대에는 우리 고장의 행정 중심지였다. | ( - ) | ( - ) | ( - ) | 양천 고성지, 소악루, 양천향교 | ( - ) | 정상부근 조망소, 잔디밭 | ( - ) | ( - ) | 강서구청 | 02-2600-6114 | 정보 없음 | 시멘트 | 나쁨 | |||||||||||||||
1104160300 | 115000300 | 까치산 | ( - ) | ( - ) | 70 | 서울특별시 | 강서구 | 화곡본동 | ( - ) | ( - ) | 통일신라 시대 화랑들이 이곳 주변에서 활쏘기 경연을 벌이곤 하였는데 한때 김유신 장군이 활시위를 당겼을 때 때마침 창공을 나는 까치 한 마리가 그 화살을 입으로 물고 이곳까지 와서 앉았다 하여 까치산이라 부름.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강서구청 | 02-2600-6114 | ( - ) | ( - ) | ( - ) | |||||||||||||||
1104990400,115000400,봉제산,( - ),( - ),117,서울특별시,강서구,,,산세는 남북으로 길게 펼쳐져 있으며 능선은 대체로 밋밋하고 경사도 완만한 부드러운 산세를 가지고 있다. 동쪽으론 등촌동이 있으며 | 서쪽으로는 화곡동이 자리 잡고 있다. 그리고 이 산에는 골짜기가 넓어 가장 큰 공간을 이루고 있다.,산을 위에서 내려다보면 봉황이 알을 품고 있는 형상이라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봉제산은 능동산 | 매봉산 | 주당산 | 화곡산이라고도 불렸는데 1760년대 해동지도 채색필사본에는 능동산으로 표기되었으며 | 여러 개의 봉우리 중 특정한 봉우리를 매봉이라 부르는 데서 유래하여 매봉산이라고도 불렸고 서낭당이 있어 이곳에서 마을의 안녕과 무병장수를 기원했다고도 하여 수당산이라고도 불렸으며 | 1967년 이후에는 화국산이라고 도 불렸다. | ||||||||||||||||||||||||||||||||
( - ) | ( - ) | ( - ) | ( - ) | ( - ) | 철쭉동산 | 산마루공원 | 연화사 | 용문사 | ( - ) | ( - ) | 강서구청 | 02-2600-6114 | 2007 | 대리석 | 좋음 | |||||||||||||||||||||||
1104170500,115000500,우장산,雨裝山,( - ),96,서울특별시,강서구,화곡제5동,,검두산과 원당산에서 기우제를 지내게 되면서부터 두산을 합쳐 우장산이라 부르게 되었다. 검두산과 원당산 두산에 기우제단을 차려놓고 천신께 기우제를 지낼 때 祭主(제주)가 세 번째 기우제를 지내는 날에는 언제나 소나기가 쏟아져 내리므로 이날 참가자 모두가 비옷을 쓰고 산으로 올라갔다는 전설에서 유래된 이름이다. 우장산은 두 개의 봉우리로 형성되어 북쪽 산을 검덕산 | 검두산 등의 이름으로 부르는데 새마을 지도자 탑이 있는 산이다. 남쪽 산은 정상봉우리로 원당산 | 남산이라 부르며 현재 청소년 직업훈련원이 있는 산이다. 정상 부근 산책로는 가을철 낙엽을 쓸지 않는 낙엽거리로 가을에 명소이다. 원당산 정상에 전망대가 있으며 | 검두산 정상에는 새마을 지도자 탑이 있다.,검두산과 원당산에서 기우제를 지내게 되면서부터 두산을 합쳐 우장산이라 부르게 되었다. 검두산과 원당산 두산에 기우제단을 차려놓고 천신께 기우제를 지낼 때 祭主(제주)가 세 번째 기우제를 지내는 날에는 언제나 소나기가 쏟아져 내리므로 이날 참가자 모두가 비옷을 쓰고 산으로 올라갔다는 전설에서 유래된 이름이다.,약 240년 전 가뭄이 심해 골원이 기우제를 세 번째 지내는 날에는 비가 옴으로 비옷을 가지고 올라가야 하므로 우장산이라 부름. | |||||||||||||||||||||||||||||||||||
( - ) | ( - ) | ( - ) | ( - ) | 정상부근 산책로 | 원당산 정상 전망대 | 검두산 정상 새마을지도자 탑 | ( - ) | ( - ) | 강서구청 | 02-2600-6114 | 1986 | 시멘트 | 좋음 | |||||||||||||||||||||||||
1104090600 | 115000600 | 증산 | ( - ) | ( - ) | 55 | 서울특별시 | 강서구 | 염창동 | 북쪽으로는 한강과 88올림픽대로와 붙어 있으며, 남쪽으로는 강서구 염창동과 연결되어 있다. 서쪽으로는 세현고등학교와 염창초등학교가 있으며 동쪽으로는 골프장이 있다. 남쪽으로는 경사가 완만하지만, 북쪽으로는 절벽으로 이루어져 있다. 옛 고전에는 증산이라 표기되어 있는데 염창동에 있는 산이라 하여 염창산이라 부른다. 그러나 원래 이름은 '일찍 증(曾)'이 아니고 '건질 증(拯)'이었다. 그 이유는 세곡선이 강화만을 통해 용산으로 가던 도중 이곳 염창산에서 자주 좌초되므로 이때 산 아래 곡식을 건지는 사람들이 모여 살았다고 하여 증미(拯米)산이라 했고, 이 말을 줄여서 증산(拯山)이라고 하였다. 과거 증산 아래는 한양으로 들어갈 소금을 보관하는 소금 창고가 있어 오늘날 염창산이라 불리었다. 이 산에는 귀신바위와 김말손 장군 설화가 전해온다. | 옛 고전에는 증산이라 표기되어 있는데 염창동에 있는 산이라 하여 염창산이라 부른다. 그러나 원래 이름은 '일찍 증(曾)'이 아니고 '건질 증(拯)'이었다. 그 이유는 세곡선이 강화만을 통해 용산으로 가던 도중 이곳 염창산에서 자주 좌초되므로 이때 산 아래 곡식을 건지는 사람들이 모여 살았다고 하여 증미(拯米)산이라 했고, 이 말을 줄여서 증산(拯山)이라고 하였다. 증산 아래는 한양으로 들어갈 소금을 보관하는 소금 창고가 있었든 관계로 오늘날 염창산이라 불리었다. 이 산에는 귀신바위와 김말손 장군 설화가 전해온다. | 옛날 전쟁할 때 진을 친 곳이라 하여 증산이라 부름.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강서구청 | 02-2600-6114 | ( - ) | ( - ) | ( - ) | |||||||||||||||
1105040100 | 116200100 | 고덕산 | 冠岳山 | ( - ) | - | 서울특별시 | 관악구 | 신림제9동 | 경기 5막 중 1막이라고 하며 태산은 아니로되 큰 바위가 많으며 심산은 아니면서도 신비경을 이루고 있으니 소금강의 이름이 있는 명산임.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관악구청 | 02-879-5000 | ( - ) | ( - ) | ( - ) | |||||||||||||||
1105040200 | 116200200 | 관악산 | 冠岳山 | ( - ) | 632 | 서울특별시 | 관악구 | 신림제9동 | 관악산은 서울시 관악구와 금천구, 경기도 과천시와 안양시에 걸쳐 있어 북한산, 도봉산과 더불어 누구나 쉽게 찾는 친근한 산이다. 멀리서 보면 온통 바위로 뒤덮여 있는 산세를 가진 관악산은 해발은 낮으나 등산로 곳곳에 위험한 바위가 있어 조심해야 한다. 관악산은 예로부터 불의 산(火山)이라 하여 조선 태조가 궁터를 지금의 경복궁 자리로 옮길 때, 무학대사가 이곳은 관악산과 마주 보이는 자리로 관악산의 화기가 궁을 눌러서 내우외환이 끊이지 않을 것이라며 반대했지만, 정도전의 남쪽에 한강이 가로질러 있어서 영향이 없을 것이라는 주장을 받아들여 지금의 경복궁을 창건하였다 한다. 그 후 태종 때 왕자의 난, 세조의 왕위 찬탈, 임진왜란, 병자호란, 그리고 경복궁에 발생한 수차례의 화재가 발생한 것을 풍수지리설로 해석하는 이도 있다. 대원군은 경복궁을 재건할 때 관악산의 화기를 누르기 위해 경복궁 정문인 광화문 앞에 바다의 신으로 상상의 동물인 해태 조각상을 만들어 세웠다. 관악산 연주대는 고려가 망하자 남은 유신 열 사람이 관악산 절에 숨어 살며 경복궁을 바라보며 통곡을 했다 하여, 임금을 사모한다는 뜻으로 연주대(戀主臺)라 불리게 되었다 한다. 이성계가 연주암을 중창한 뒤, 태종의 두 아들인 양녕대군과 효령대군은 태종이 왕위를 셋째 충녕대군(세종)에게 물려줄 뜻을 알고 관악산에 입산하였다 한다. 예전에 관악산을 삼성산이라 부른 것은 신라의 고승 원효, 의상, 윤필이 이 산에서 세 승려가 일 막, 이 막, 삼 막의 세 암자를 짓고 따로 수도하여 득도하였다 하여 붙여진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임진왜란 때 일 막, 이 막은 소실되고 삼막사(三幕寺)만 남았다는 것이다. | 산중에는 태조 이성계가 서울을 도읍지로 정할 때 건축하여 곤란에 대처했다고 전해지는 원각사와 연주암(戀主庵 : 경기기념물 20)이 있고 그밖에 자왕암(慈王庵)·불성사(佛成寺)·삼막사(三幕寺)·관음사(觀音寺) 등의 산사(山寺)와 과천향교 등이 있다. 이 중 삼 막사는 원효·의상 등의 고승들이 수도하였다고 한다. | ( - ) | ( - ) | ( - ) | 연주암, 관악사지 | ( - ) | 연주대, 호수공원 | ( - ) | ( - ) | 관악구청 | 02-879-5000 | 2002 | 화강암 | 좋음 | |||||||||||||||
1105990300 | 116200300 | 청룡산 | 靑龍山 | ( - ) | - | 서울특별시 | 관악구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관악구청 | 02-879-5000 | ( - ) | ( - ) | ( - ) | ||||||||||||||||
1106080100 | 112150100 | 아차산 | 峨嵯山 | ( - ) | 287 | 서울특별시 | 광진구 | 중곡동 | 너른 벌판 위를 달리던 한 줄기 바람이 갑작스럽게 숨을 몰아쉬어야 하는 곳, 우뚝 아차(蛾嵯)라고 이름 한 곳이 바로 아차산이다. 정상표고 200m 되는 지점에서 시작하여 동남의 한강 변 쪽으로 경사진 산허리의 윗부분을 둘러싸고 있는 산성의 형태가 남아 있다. 백제의 도읍이 한강 유역에 있을 때 우뚝 솟은 지형적 특성으로 인해 일찍부터 이 아차산에 흙을 깎고 다시 돌과 흙으로 쌓아 올려 산성을 축조함으로써 고구려의 남하를 막으려는 백제인의 노력이 있었다. 한강을 사이에 두고 맞은 편 남쪽에 있는 풍납동 토성과 함께 중요한 군사적 요지로서 백제의 운명을 좌우하던 곳이기도 하다. 아단성(阿旦城), 아차성(蛾嵯城), 장하성, 광장성 등으로 불리기도 하여 백제, 신라, 고구려가 한강을 중심으로 공방전을 장기간에 걸쳐 벌였던 것을 짐작할 수 있다. 이 성의 흔적은 60년대까지만 해도 눈으로 알아볼 수 있을 정도로 남아있었다. 아차산 분수령의 전부와 그 북쪽 기슭 면목동의 동쪽과 아차산의 서남쪽 기슭을 달리는 진맥의 분수령 및 그곳부터는 분명치 못하지만, 모진동 밭에 이르는 사이에 이어져 있었던 길이 4km에 달하는 토성과 석 성 자리는 신라가 쌓은 장한성으로 알려졌다. 1,500여 년이라는 장구한 역사의 수레바퀴 속에서 여러 차례 그 운명해야 했던 아차산성은 아직도 그 자신의 운명을 나타내려는 듯 당시의 토기와 기왓조각 등을 보여주고 있으며, 그 옛날 산성 수비군의 역할을 다시 되새겨보려는 듯 많은 사람이 오르는 시민공원이 되어 그 역사적 변신을 꾀하고 있다. | 아차산은 광진구의 북쪽에 있는 주산(主山)이다. 용마봉(龍馬峰)을 제일 높은 봉우리로 하여 야트막한 산들이 줄지어 늘어서 수려(秀麗)한 경관을 이루고, 아차산성을 비롯한 옛 유적(遺蹟)이 봉우리마다 남아 있는, 그리 높지는 않지만 이름있는 산이다. 이 아차산의 이름에는 다음과 같은 설화(說話 : 전해오는 이야기)들이 있다. 하나는 고구려 온달(溫達) 장군에 관련된 이야기인데, 고구려가 장수왕의 남진 정책으로 이 지역을 차지한 후 고구려 영양왕 때, 평강공주의 남편이며 돌아간 평강왕(평원왕)의 사위인 온달 장군이 신라에 빼앗긴 이 지역을 비롯한 죽령(竹嶺) 이북의 땅을 되찾기 위해 신라군과 싸우다가 이곳 아차산의 산성에서 신라군의 화살에 맞아 전사(戰死)하였다는 것이다. 이때 고구려군이 온달 장군의 시신(屍身)을 평양으로 옮겨 가려 하였으나 장군의 한(恨)이 맺혔음인지 영구(靈柩)가 움직이지를 않았다. 이에 아내인 평강공주가 평양에서 와서 관(棺)을 어루만지며 사생(死生)이 이미 결정되었으니 아아, 돌아갑시다. 하자 관이 움직여 돌아가 장례를 치를 수 있었다. 그래서 오늘날 이곳 주민들은 아차! 온달 장군이 이곳에서 그만 죽고 말았구나.라는 의미로 이곳을 아차산이라 불렀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것은 물론 역사적 사실은 아니다. 온달 장군이 전사한 이야기와 평강공주가 와서 달래어 돌아갔다는 것은 역사 기록(삼국사기)에 나오는 이야기이지만, 그 장소는 아차산이 아니라 훨씬 남쪽인 충북 단양의 온달산성이라는 것이 현재로써 설득력 있는 학설이기 때문이다. 아차산의 이름 유래에 대한 또 다른 설화로는 다음과 같은 것이 있다. 조선 명종(明宗) 때 복술가(卜術家) 홍계관(洪繼寬)이 어느 날 자기 명(命)을 점쳐 보고는 아무 날에 횡사(橫死)할 것이라는 점괘가 나오자 살아날 길을 찾아보니 임금이 계시는 용상(龍床) 아래 숨어 있으면 횡사를 면한다는 점괘가 나왔다. 홍계관은 왕에게 아뢰어 승낙을 받고 용상 아래 숨어 있었다. 그때 쥐 한 마리가 마당을 지나가자 왕은 홍계관에게 지나가는 쥐가 몇 마리인지 점쳐 보라하였고, 홍계관은 세 마리입니다. 하였다. 왕은 이 말을 듣고 노하여 홍계관의 목을 베라 하였다. 홍계관이 끌려나가 형장(刑場)에 도착하여 급히 점을 쳐보니 한 시간 정도만 버티면 살 수 있다는 점괘가 나왔다. 이에 형 집행을 조금만 늦추어 달라고 사정하자 형리(刑吏)가 잠시 기다려 주게 되었다. 한편, 홍계관을 형장으로 끌고 가게 한 왕은 그 쥐를 잡아 배를 갈라 보게 하자 뱃속에 새끼 두 마리를 배고 있었다. 홍계관의 신기한 점술에 놀란 왕은 급히 한 신하를 보내어 참형(斬刑)을 중지시키게 하였다. 그 신하가 급히 달려가 형장이 멀리 보이자 집행을 중지하라고 소리쳤으나 잘 들리지 않는 듯 하였다. 이에 손을 흔들며 중지하라는 표시를 하였 다. 그러나 형리는 사형 집행을 빨리하라는 신호로 오해하여 홍계관의 목을 베고 말았다. 신하가 왕에게 돌아와 결과를 아뢰자 왕이 아차 늦었구나!하며 매우 안타까워하였다. 그 후로 사람들은 이 형장이 있었던 고개를 '아차 고개'라 하였는데 그 고개가 곧 아차산이라는 것이다. 물론, 이 설화는 아차산의 이름이 이미 있었던 후 산 이름과 연관하여 홍계관의 일화를 끌어들인 이야기일 것이다. 일설에는 이 아차 고개가 지금의 노량진동 사육신묘(死六臣墓)가 있는 마루턱이라고도 한다. 아차산의 이름은 원래 아단산(阿旦山)으로 생각되는바, 삼국시대에 이미 이곳에 아단성(阿旦城)을 쌓았다는 기록이 있는 것으로 보아 아주 오래된 이름이며, 그 뜻을 보면, 아단의 아(阿)는 한강의 옛 이름인 “아리수”의 준말이요, 단(旦)은 돈탄과 같이 고구려의 지명(地名) 끝에 흔히 붙 붙는 곡(谷 : 골짜기)을 의미하는 것으로 추정하는 학설이 있다. 또는, 아차산, 아차성이란 말이 ‘나의 산’, ‘나의 성’이라는 말의 고어(古語)를 한 자로 표기한 것이라는 견해도 있다. 한편, 아단(阿旦)이 아차(阿且)로 바뀌게 된 것은 조선 시대에 태조 이성계가 왕이 되자 이름을 단(旦)으로 바꾸었기 때문에 임금의 이름과 같은 글자를 피하려는 의도에서 비슷한 글자인 차(且)를 쓰게 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이러한 추정은 근거가 확실치 않다는 반론도 있다. 오히려, 옛 기록에서 단(旦) 자와 차(且) 자가 함께 보이는 것으로 보아 아단산과 아차산이 다른 산이거나, 단(旦) 자를 차(且) 자로 잘못 판각(板刻)한 것이라는 여러 견해가 있다. 조선 시대 이후에는 아차산(阿且山)의 한자가 바뀌어 아차산(峨嵯山)이라 부르고 있으며, 아차산의 이름에 얽힌 역사적 사실에 대해서는 학자들의 견해가 아직 일치하고 있지 않다. | 옛날 어떤 장사가 이 산을 메고 가다가 멜빵끈이 끊어져 떨어뜨리는 바람에 아차했다는 전설이 있어 아차산이라 함. | ( - ) | ( - ) | 아차산성, 아차산 봉수대지 | 1아차산성 : 이 성은 서울 동부의 한강 변에 있는 삼국시대의 산성이다. 백제초기의 한성시대에 이 성은 고구려를 맞아 수도를 방어하는 역할을 하였다. 이 산성을 <삼국사기>에 기록된 아단성지(阿旦城址)로 추정하는 견해가 유력하다. 백제의 수도 한성이 고구려군에 개로왕이 아단성 아래에서 피살되었다고 하며, 고구려 평원왕의 사위로 용맹을 날리던 온달 장군이 죽령 이북의 잃어버린 땅을 찾기 위하여 이 아단성 밑에서 신라군과 싸우다가 화살을 맞아 전사했다고 한다. 이 산성은 조선 태조가 아단을 아차(阿且)로 고쳐 아차성(阿且城)이라 불렀으며, 따로 장한성(長漢城), 광장성(廣壯城)이라 부르기도 한다. 이 산성은 해발 200m의 산 정상을 중심으로 동그랗게 축조하여 이른바 퇴뫼식에 속하지만, 규모가 커서 성안에 작은 계곡도 있어 포곡식으로도 보인다. 성벽의 높이는 외부에서 보면 평균 10m 정도이며, 내부에서 보면 1~2m이다. 1998~99년에 시행된 1차 발굴에서는 구리시 지역의 아차산 보루성 유적이 발굴되었고, 2차 발굴에서는 광진구 지역의 아차산성이 발굴 발굴되었다. 이 결과 1차 발굴의 보루성에서는 고구려의 성벽, 건물터, 온돌 자리와 집수정이 확인되었으며, 상당량의 철기와 토기도 수습되었다. 2차 발굴의 아차산성에서도 고구려 시대의 성벽, 건물터, 연못터가 확인되었으며, 상당량의 철기와 토기도 수습되었다.; 2아차산 봉수대지 : 아차산 봉수대지는 해발 160.1m의 봉화산(烽火山) 정상에 위치하며, 해발 160.1m의 봉화산(烽火山) 정상에 위치하며, 조선 시대 전국 5개 봉수로 중 함경도 경흥(慶興)을 시발점으로 하여 강원도를 거쳐 경봉수(京烽燧)인 목멱산 봉수대(木覓山烽燧臺)로 연결되는 직봉(直烽) 122, 간봉(間烽) 58처가 있는 제1 봉수로의 마지막 내지(內地) 봉수대였다. 봉수제도는 삼국시대 이전부터 시행되었던 것으로 추측되며 본격적인 국가제도로 확립된 것은 고려 시대고, 조선 시대에 이르러 더욱 발전ㆍ정비되었다. 세종 때에는 특히 군사기능의 활성화를 위해 전국적인 봉수망을 정비하였다. 이 제도는 임진왜란 후 제구실을 못 하다가 고종 34년(1894)에 폐지되었다. 조선의 봉수는 그 시설상 전국의 모든 봉수가 집결하는 중앙 봉수인 서울 목멱산(남산)의 경봉수, 해륙, 변경의 제1선에 위치하여 연대라고 불된 연변봉수(沿邊烽燧), 경봉수와 연변봉수를 연결하는 내지봉수(內地烽燧)로 구분되며, 이밖에 기간 선로 상의 직봉[直線烽燧] 과 그 보조선 상의 간봉[間線烽燧]으로 구분하기도 한다. 봉수의 전달은 정세의 완급에 따라 달리했는데, 평상시에는 1거(炬), 왜적이 해상에 나타나거나 적이 국경에 나타나면 2거, 왜적이 해안에 가까이 오거나 적이 변경에 가까이 오면 3거, 우리 병선(兵船)과 접전하거나 국경을 침범하면 4거, 왜적이 상륙하거나 국경에 침범한 적과 접전하면 5거를 올리도록 하였다. 만약 적의 침입이 있을 때 안개, 구름, 비, 바람 등으로 봉수에 의해 전달할 수 없을 봉수대는 포성(砲聲, 信砲?發火 등)과 각성(角聲, 角吹)으로 주위의 주민과 수비군인에게 급보를 알리 고, 봉수군이 다음 봉수대까지 달려가서 알리기도 하였다. 아차산봉수대는 ≪신증동국여지승람≫?≪대동여지도≫?≪양주목읍지≫ ≪대동지지≫ 등의 옛 문헌에 의하면, 아차산 주봉에서 북쪽으로 벗어난 능선의 서쪽 봉우리, 즉 현재의 '봉화산'에 있었던 것으로 나타나고 있으나, 조선 시대의 명칭에 따라 '아차산봉수대'로 이름한 것이다. 이 봉수대는 다른 곳에 현존하는 봉수대의 형태와≪조선보물고적조사자료≫ 등의 기록을 참고하여 서울정도 600년 기념사어의 하나로 현 위치에 복원되었다. | ( - ) | ( - ) | ( - ) | 광진구청 | 02-450-1114 | ( - ) | ( - ) | ( - ) | |||||||||||||||
1107990100 | 115300100 | 개웅산 | 開雄山 | ( - ) | 125 | 서울특별시 | 구로구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구로구청 | 02-860-2114 | ( - ) | ( - ) | ( - ) | ||||||||||||||||
1109020100 | 113500100 | 불암산 | 佛岩山 | ( - ) | 510 | 서울특별시 | 노원구 | 상계동 | 불암산은 남양주시 별내면 화접리와 서울특별시 노원구와 경계를 이룬다. 산 서쪽에는 서울특별시가 있고 동쪽으로는 남양주시 별내면이 있으며 바위산이라 수목은 울창하지 않지만, 능선이 기암으로 이어지고 봄철 철쭉꽃이 장관을 이룬다. 산 전부가 화강암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주봉 남쪽에는 높이 420m의 제2봉이 있다. 전체적인 지형 지세는 남북으로 능선이 뻗어내린 장방형의 산지로 지형 변화가 심하고 암반 노출지가 많다. 경사의 대부분이 30% 이상의 급경사면을 이루고 있으며, 주 경사 방향은 남향 또는 서향이 많다. 불암산은 수락산과 같이 바위산을 이루고 있으며 최고봉의 표고는 507m로 그 자체가 준험한 화강암의 바윗덩어리 같은 느낌을 준다. 그런가 하면 불암산의 제2봉은 제1봉 남쪽에 420m의 표고로 깎아지른 듯 우뚝 솟아 있다. | 불암산은 1,100년 전 치중대사가 개산하여 불암산이라 칭한 명칭이 오늘까지 내려왔다. 불암산이라는 명칭은 화강암의 큰 바위로 된 봉우리가 마치 송낙을 쓴 부처의 형상이라 붙여진 것이라 한다. 불암산을 필암산(筆岩山) 붓바위산, 천보산(天寶山) 이라고도 하였는데 이는 먹골, 벼루말과 함께 땅의 기운을 꺾는다는 문방사우의 이름을 빌린 풍수지명이다. | 불상을 많이 모신 사찰이 많다 하여 불암산이라 함.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노원구청 | 02-2116-3114 | 1994 | 화강암 | 좋음 | |||||||||||||||
1110010100 | 113200100 | 도봉산(자운봉) | 道峰山 | ( - ) | 740 | 서울특별시 | 도봉구 | 도봉동 | 도봉산은 서울 근교의 산으로 예로부터 북한산과 하나의 산으로 취급됐다. 우이령을 경계로 북한산과 나란히 솟아 있어 현재 두 산을 북한산국립공원에 함께 포함하고 있다. 북한산 면적 55㎢에 비해 도봉산은 약 24㎢로 절반에 불과하나 산세가 아름다워 등산객이 끊이지 않는 곳이다. 주능선 상에는 최고봉인 자운봉을 비롯해 만장봉, 선인봉, 주봉 등의 바위봉우리와 서쪽으로 다섯 개의 바위봉우리가 나란히 줄지어 있는 오봉이 있다. 선인봉, 만장봉, 주봉, 우이암은 각기 거대한 암벽들이다. 도봉산은 우람한 기암괴석과 뾰족이 솟은 바위봉우리들이 장관을 이루며, 사방으로 뻗은 계곡을 따라 녹음이 우거져 명소를 만들고 있다. 사계절 모두 즐겨 찾는 산이지만 가을이면 단풍의 물결이 여느 산 못지않다. 도봉산의 3대 계곡은 문사동 계곡, 망월사 계곡(원도봉 계곡), 보문사 계곡(무수골) 이다. 이 계곡들이 바로 산행기점과 연결된다. 도봉산은 등산코스가 다양한데 그중에서 우이동, 도봉유원지, 망월사역(장수원), 서낭당 코스가 대표적이다. 도봉산의 주봉은 자운봉(739.5m)으로, 정상을 기점으로 등산로가 사방으로 거미줄같이 수십 가닥이 펼쳐져 있다. 모두 합쳐 100여 개의 산행 코스가 있다. 그중 도봉산 등산로의 핵심은 포대 능선으로, 이 산의 등뼈를 이루는 포대, 능선, 자운봉, 칼바위, 우이암, 능선으로 이어진다. 포대 능선은 능선 중간에 대공포 진지인 포대(砲臺)가 있었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도봉산 산행 들머리는 수없이 많지만 크게 분류하면, 안골 유원지, 회룡사 입구, 원도봉 유원지, 도봉 유원지, 서낭당, 우이동, 송추 7개 코스를 꼽을 수 있다. 빼어난 암릉미를 자랑하는 도봉산은 어느 코스이든 바위가 곳곳에 도사리고 있어 주의가 필요하다. 수도권 등산객이 많이 몰리는 휴일에는 주능선인 포대 능선 등에 정체 현상이 벌어질 정도로 붐빈다. 갈림길이 무수히 많아 길을 잃을 수 있으므로 사전에 지도를 꼼꼼히 챙겨야 하는 산이다. | ( - ) | 만장봉은 옛날 어르신들이 보기에는 만장이나 되어 보인다 하여 만장봉이라 이름 지었으며, 전해오는 얘기로 태조 이성계가 자일이나 밧줄도 없이 올랐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 ( - ) | ( - ) | ( - ) | ( - ) | 해골 바위, 두꺼비 바위, 열대어 바위, 인절미 바위, 도봉계곡, 원도봉계곡, 회룡계곡, 송추계곡 | ( - ) | ( - ) | 도봉구청 | 02-2091-2120 | ( - ) | ( - ) | ( - ) | |||||||||||||||
1111110100 | 112300100 | 배봉산 | 拜峰山 | ( - ) | 106 | 서울특별시 | 동대문구 | 휘경제2동 | 공원이 부족한 동대문구의 유일한 산지형 공원이면서 상징공원으로 군부대가 주둔하고 높이 15~20M의 잘린 땅에 대규모의 암반이 노출되어 있던 곳을 1992년에 공원으로 조성하였다. 어린이놀이터 및 야외공연장, 각종 운동시설, 4KM의 산책로가 있어 지역주민의 생활문화 향상 및 여가생활의 장으로 활용되고 있으며, 부족한 녹지공간 확보를 위해 기존 공원과 중랑천제방을 연계한 녹지순환 길을 조성하고자 배봉산 근린공원 내 산책로를 보완 정비하고 중랑천 길과 연계한 보도육교를 연결하여 동대문구의 체계화된 중심공원으로 거듭나고 있다. 매년 5월에 구민걷기대회가 열리고 또한 사생대회, 문화 관련 음악행사, 체조교실 등 다양한 이용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어 공원이용이 활성화된 곳이다. | 배봉(拜峰)이란 산 이름은 배봉산의 형세가 경복궁이 있는 서쪽 정궁을 향하여 공손히 절하는 모습과 비슷하여 불리게 되었다. 또한, 물과 산이 만나 명당자리로 꼽히면서 영우원, 휘경원 등 왕실 관련 능이 많이 들어섰는데, 서민들이 지나갈 때마다 고개를 숙이고 지나쳐 붙여진 이름이라는 유래도 있다. 그중 가장 널리 알고 있는 유래는 조선 영조 때 사도세자가 죽은 뒤, 사도세자의 아들 정조가 불효에 대해 속죄한다며 날마다 부친의 묘소를 향해 배례하면서 ‘배봉산’으로 불리게 되었다는 것이다. 시립대학교 부근에 터를 정했던 영우원은 당쟁의 희생물이 되어 뒤주에서 비참하게 죽은 사도세자의 묘였다. 영조는 세자가 죽자 배봉산 자락에 묘를 조성하도록 하고, 묘호를 수은묘라 하고, 사도라는 시호를 내렸다. 정조 즉위 후, 금족령으로 황폐해졌던 아버지 묘를 개축하여 영우원이라 하였다. 그 후, 정조 13년 영우원은 수원의 화산으로 천장하여 융릉으로 능호를 바꾼다. 사도세자 묘의 천장으로 빈터가 된 이곳은 60년 뒤 순조의 생모인 수빈 박 씨가 시호를 걸친 나무, 묘호를 휘경이라 하고, 영우원 터 부근에 묘역을 조성하여 장례를 치른다. 그 후, 철종 6년에 휘경원에 잠들어 있던 수 박씨 묘소는 터가 좋지 않다는 풍수사의 주장에 따라 양주 땅으로 천장한다. 이렇듯 영우원이 있던 자리는 배봉산 자락으로 서울 시립대가 자리 잡고 있는 곳이고, 휘경동이란 땅이름도 수빈 박씨가 잠시 잠들었던 휘경원에서 유래된 것이다.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동대문구청 | 02-2127-5000 | ( - ) | ( - ) | ( - ) | |||||||||||||||
1113030100 | 114400100 | 노고산 | 老姑山 | ( - ) | 105 | 서울특별시 | 마포구 | 노고산동 | ( - ) | ( - ) | 산 모양이 늙은 할머니처럼 생겼다 하여 노고산이라 한다.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마포구청 | 02-3153-8114 | ( - ) | ( - ) | ( - ) | |||||||||||||||
1113220200 | 114400200 | 와우산 | 臥牛山 | ( - ) | 102 | 서울특별시 | 마포구 | 창전동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마포구청 | 02-3153-8114 | ( - ) | ( - ) | ( - ) | |||||||||||||||
1114210100 | 114100100 | 금화산 | ( - ) | ( - ) | - | 서울특별시 | 서대문구 | 충정로동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서대문구청 | 02-330-1301 | ( - ) | ( - ) | ( - ) | |||||||||||||||
1114130200 | 114100200 | 바람산 | ( - ) | ( - ) | - | 서울특별시 | 서대문구 | 창천동 | ( - ) | ( - ) | 바람을 막아주는 산이라 하여 바람산 또는 풍산이라 한다.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서대문구청 | 02-330-1301 | ( - ) | ( - ) | ( - ) | |||||||||||||||
1114220300 | 114100300 | 안산 | 鞍山 | ( - ) | 296 | 서울특별시 | 서대문구 | 홍제제2동 | 안산의 지세는 대체로 급경사로 이루어져 있으나 높이가 297M로 낮은 편이어서 주민들의 산책로로 이용되고 있다. 면적은 약 209만 제곱미터이며 여러 개의 등산로가 조성되어 있고, 다양한 종류의 야생화와 함께 숲길 옆으로 소나무, 잣나무, 독일가문비, 메타세쿼이아, 벚나무, 단풍나무, 복자기나무가 울창해 도심 속에서 삼림욕을 즐길 수 있는 서울 서대문구의 대표적인 명소이다. 정상에는 안산봉수대가 있으며 북한강과 인왕산, 행주산성과 한강을 조망할 수 있다. | ( - ) | 연희동 뒤에 있는 산으로 모양이 길마(소나 말이 짐을 지거나 수레를 끌 때 안장처럼 얹는 제구)처럼 생겼다 하여 길마재 또는 한자명으로 안산이라 함. | ( - ) | ( - ) | 봉원사, 무악동 봉수대 | ( - ) | 무악동 봉수대, 봉원사, 산림욕장, 벚꽃길 | ( - ) | ( - ) | 서대문구청 | 02-330-1301 | 정보 없음 | 주물 | 좋음 | |||||||||||||||
1114230400 | 114100400 | 인왕산 | 仁王山 | ( - ) | 340 | 서울특별시 | 서대문구 | 홍제제4동 | 나라 안팎으로 이름난 산, 북한산이 남쪽으로 보현봉을 솟구치고 다시 북악에서 한 줄기는 동쪽 낙산으로 또 한 줄기는 서쪽으로 뻗어 인왕산을 빚어 놓았다. 풍수상으로 보면 조산인 북한산에서 주산인 북악산에 연결되고 낙산이 좌청룡이면 인왕산은 우백호가 된다. 인왕산은 서울 어느 방향에서 오르든지 한 시간이면 오를 수 있고 오르면 조망이 뛰어나다. 서울의 중심에 솟아있으며 높지는 않지만, 산세는 웅장하다. 특히 동쪽 기슭이 아늑하고 풍치가 빼어나 장안 제일의 명승지라 할 수 있다. 북쪽 자락에 있는 부암동은 무계동이라 불리던 곳으로 중국의 무릉도원에 버금갈 정도의 아름다운 경치를 자랑하던 곳이다. 인왕산이란 명칭은 산자락에 인왕사라는 절이 있어 붙여진 이름이다. 조선 중종 때는 필운산이라 불리기도 해, 지금도 사직공원 근처엔 동네 이름으로 남아있다. 인왕산 하면 떠오르는 이야기가 몇 가지 있다. 그중 첫 번째가 호랑이다. 조선 시대 인왕산은 호랑이의 출몰로 호환이 끊이지 않았다. 민가는 물론 경복궁이나 창덕궁에까지 들어와 소란을 피웠다. 피해가 커지자 조정에서 군대를 동원해 호랑이를 잡을 정도였다. 불과 100년 전인 1901년에도 경복궁에 호랑이가 출몰한 기록이 있다. 수려한 경치 덕분에 인왕산을 배경으로 한 산수화가 많다. 겸재 정선의 ‘인왕제색도’가 널리 알려졌다. 국보 216호인 이 작품은 비 온 뒤 안개가 피어오르는 인왕산의 모습을 잘 표현한 걸작이다. 또 한 가지 인왕산에 대한 일화는 무장공비사건이다. 1968년 북한의 김신조 일당이 청와대를 습격하기 위해 인왕산 옆 산길로 질러왔다. 그 사건 뒤로 인왕산은 일반인 출입이 통제되었다가 1993년 2월 24일부터 오를 수 있게 됐다. | 일제강점기에 인왕산의 표기를 ‘仁旺’이라 하였으나, 1995년 ‘仁王’으로 옛 지명이 환원되었다. 군사적인 이유로 통제되었다가 1993년부터 개방되었다. | 조선 시대 인왕동 즉 인왕산하(仁王洞 則 仁王山下)하여 인왕동에 절경을 찬양한 글귀도 있는바 인왕동에 있는 산이므로 인왕산이라 함. | ( - ) | ( - ) | ( - ) | ( - ) | 기차바위 능선, 정상부 | ( - ) | ( - ) | 서대문구청 | 02-330-1301 | 1994 | 시멘트 | 좋음 | |||||||||||||||
1115010100 | 116500100 | 구룡산 | 九龍山 | ( - ) | 308 | 서울특별시 | 서초구 | 내곡동 | 구룡산은 포이와 양재지역에서 가깝게 갈 수 있는 부담 없는 산이다. 국수봉이라고도 불렸던 구룡산은 옛날 임신한 여인이 용 10마리가 하늘로 승천하는 것을 보고 놀라, 소리를 지르는 바람에 한 마리가 떨어져 죽고 9마리만 하늘로 올라가 구룡산이라 불렸다는 전설이 있다. 산 높이가 약 300m 정도의 야산에 불과할지 모르나 친지 가족과 함께 부담 없이 하는 산행 코스로는 제격이며, 아침 일찍 운동을 즐기기에도 제격인 산이라 할 수 있다. 강남 시내의 전경을 한눈에 바라볼 수 있어서 한번 가볼 만하다. 신갈나무, 리기다소나무, 아카시아, 현사시나무 등이 산재해 있다. 높거나 험하지 않아 부담 없는 산행이나 아침 운동을 즐기기에 적당한 산이다. 양재 사거리에서 성남 방향으로 1.5km 떨어진 염곡 사거리 동쪽 능선 끝에서 올라가면 된다. | ( - ) | 국수봉이라고도 불렸던 구룡산은 고려 시대 때 임신한 여인이 용 10마리가 하늘로 승천하는 것을 보고 놀라, 소리를 지르는 바람에 한 마리가 떨어져 죽고 9마리만 하늘로 올라가 구룡산이라 불렸다는 전설이 있다. | ( - ) | ( - ) | 헌인릉 | 헌인릉 : 사적 194호. | 구룡사, 양재 꽃시장, 시민의 숲 | ( - ) | ( - ) | 서초구청 | 02-2155-6114 | ( - ) | ( - ) | ( - ) | |||||||||||||||
1115110200 | 116500200 | 우면산 | 牛眠山 | ( - ) | 313 | 서울특별시 | 서초구 | 방배제3동 | 과천시 최북단, 표고는 293m이며 서울시 서초구(우면동, 방배동)와 경계를 이루고 있다, 남태령(南泰領)고개 동쪽에 있는 산으로, 관악산에서 동쪽으로 뻗은 능선 상에 솟아 있으며, 남태령 고갯길이 확장되면서 분리되었고, 동쪽의 구룡산, 대모산과도 도시개발(경부고속도로)이 되면서 분리되어 독립된 산이 되었다. 우면산은 상경이 잘려 도시 속에 고립되어 있지만, 산속의 옹달샘이 끊임없이 솟아 나와 인근 주민들에게 좋은 약수가 되고 있다. 전망대에 오르면 강남·북 시가지와 한강, 북한산, 수락산, 불암산, 아차산이 펼쳐 보인다. 우면산 일대는 각종 도시시설, 정부기관들이 주변을 에워싸면서 시민의 휴식공간으로 주목받고 있고 각종 운동시설, 편익시설 등을 설치하여 공원기능을 하고 있다. | 산 모습이 소가 졸고 있는 형상을 닮았다 해서 우면(牛眠)이란 이름으로 불리고 있다. 예로부터 과천 쪽 토박이들이 우면 보다 우만, 우마니 하고 불러온 것으로 보아 원래 움 안에서 나온 땅이름이 아닌가 생각된다. (산 밑에 마을들을 '우마니'라 일컬어 불렀음) 산의 부분 이름으로 갓바위가 있는 산이라 '관암산'(冠岩山)이라고 부르고, 또는 조선 성종의 형인 월산대군의 태를 묻은 산이라 하여 '태봉산'(胎峰山)이라고 한다. | 산에 소, 말 등의 가축을 사육하고 있어 소가 졸고 있는 광경을 쉽게 볼 수 있었으며 산형 또한 소가 졸고 있는 형국이라 해서 우면산이라 부르게 되었다. | ( - ) | ( - ) | 지석묘 | 지석묘 : 1958~1959년 조사된 청동기 유적인 '지석묘'(양재동 6기, 우면동 1기)는 정식 발굴 조사 한번 거치지 못하고 서울시에 편입되면서 도시계획에 의하여 밀려나서 지금은 흔적조차 찾을 길이 없다. | 대성사, 정도전의 묘, 태봉, 이존오사당, 예술의 전당, 돌배나무, 남태령고개, 선바위, 우면산 생태공원, 남태령 전원마을 | ( - ) | ( - ) | 서초구청 | 02-2155-6114 | ( - ) | ( - ) | ( - ) | |||||||||||||||
1115010300 | 116500300 | 인능산 | 仁陵山 | ( - ) | - | 서울특별시 | 서초구 | 내곡동 | ( - ) | ( - ) | 태종 대왕의 비경 왕후 면 씨의 능이 있어 인능산이라 부름.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서초구청 | 02-2155-6114 | ( - ) | ( - ) | ( - ) | |||||||||||||||
1115120400 | 116500400 | 청계산 | 淸溪山 | ( - ) | 616 | 서울특별시 | 서초구 | 양재제2동 | 수정구 금토동과 상적동이 기슭에 자리하고 서울 서초구 원지동, 그리고 의왕시 청계동, 과천시 문원동과의 접경지역에 있는 산으로 인근 도시의 주민들이 많이 찾는 산이며 옥녀봉(玉女峰), 망경대(望京臺), 매봉, 이수봉 등 전망이 좋은 봉우리가 많으며 등산객의 왕래가 잦으면서도 자연 생태계가 잘 보전되고 있다. 봄철에 진달래와 철쭉이 울창하며 혼효림의 가을 단풍도 매우 경치 있다. | 망경대 송산 조견 선생이 고려말 영남 안렴사로 있을 때 나라가 망하자 통곡하며 두류산(頭流山, 현 지리산)으로 들어가 이름을 견(絹)으로 고치고, 자(字)도 종견(從犬)이라 하였다. 조선 개국초에 이태조가 공(公)의 절개를 찬양하고 재능을 아껴서 호조전서에 명하였으나 끝내 사양하고 청계산으로 은거하여 건너편 상봉인 망경대에 자주 올라 송도(松都)를 바라보며 슬퍼하다가 마왕 굴 샘물로 갈증을 풀었다고 한다. 본래 상봉에 오르면 만경(萬景)이 전개된다는 데서 유래한 이름이었으나 그곳에 자주 올라 개경을 바라보았다 하여 세인들이 망경대라 부르게 되고 세간에는 망경대의 노래도 유행되었다고 한다. 청계산 푸른 용이 산허리에서 뚫고 나와 흰 구름을 헤치며 하늘로 올라갔다는 전설이 있어 예전에는 청룡산이라고도 하였다. 국사봉 고려가 멸망하고 조선이 세워지자 청계산에 은거하던 고려의 충신 조윤이 멸망한 나라를 생각하던 곳이라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이수봉 조선 연산군 때의 유학자인 정여창 선생이 스승 김종직과 벗 김광필이 연루된 무오사화의 변고를 예견하고 한때 이산에 은거하며 생명의 위기를 두 번이나 넘겼다 하여 후학인 정구 선생이 이수봉이라 명명하였다. | 서울특별시 최남단에 있는 산으로 관악산 줄기의 거산이며 맑은 계곡이 많은 산이라 하여 청계산이라 부름. | ( - ) | ( - ) | 의왕 청계사 동종 | 의왕 청계사 동종 : 보물 제117호. 조선 숙종 때 경기도와 경상도 지역에서 활동한 승려인 사인 비구에 의해서 만들어진 조선 시대 종이다. 18세기 종의 형태를 잘 보여 주는 것으로 조선 후기 범종 연구에 중요한 자료로 평가받고 있다. | 매바위, 석기봉에서의 과천시, 서울시의 조망 | ( - ) | ( - ) | 서초구청 | 02-2155-6114 | 1976 | 시멘트 | 나쁨 | |||||||||||||||
1116160100 | 112000100 | 큰매봉 | ( - ) | ( - ) | 119 | 서울특별시 | 성동구 | 행당동 | ( - ) | ( - ) | 조선 시대 국왕이 매를 놓아 사냥하던 곳으로서 응봉 또는 큰 매봉이라 함.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성동구청 | 02-2286-5114 | ( - ) | ( - ) | ( - ) | |||||||||||||||
1118150100 | 117100100 | 천마산 | 天馬山 | ( - ) | 141 | 서울특별시 | 송파구 | 마천제2동 | ( - ) | ( - ) | 병자호란 당시 이 산에서 용마가 나왔다 하여 마산이라 하며 산의 형태가 말같이 생겨서 마산이라 불리고 있음.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송파구청 | 02-2147-2000 | ( - ) | ( - ) | ( - ) | |||||||||||||||
1121990100 | 111700100 | 매봉산 | 每奉山 | ( - ) | 108 | 서울특별시 | 용산구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용산구청 | 02-2199-6114 | ( - ) | ( - ) | ( - ) | ||||||||||||||||
1122140100 | 113800100 | 백련산 | 白蓮山 | ( - ) | 216 | 서울특별시 | 은평구 | 응암제2동 | 백련산은 높이 215.5m의 낮은 산이지만 서울 시내 서대문구와 은평구의 경계에 자리하고 있어 주말이면 응암동, 홍은동 일대의 주민들이 자주 찾는 산이며, 휴식공간으로 잘 활용되고 있다. 신라 경덕왕 때(서기 747년) 진표율사가 창건, 무학대사가 중건한 백련사란 절이 있어 백련산이라 불리었다. | ( - ) | 신라 경덕왕 6년(서기 747년) 진표율사에 의해 창건된 백련사가 위치하여 백련산이라 불린다. | ( - ) | ( - ) | ( - ) | ( - ) | 은평정, 리기다소나무 숲 | 1은평정 : 은평정에 오르면 은평구와 서대문구 쪽을 조망할 수 있음.; 2리기다소나무 숲 : 리기다소나무가 트랙3 주변으로 이어져 있음. | ( - ) | 은평구청 | 02-351-6114 | ( - ) | ( - ) | ( - ) | |||||||||||||||
1122130200 | 113800200 | 응봉 | 鷹峰 | ( - ) | - | 서울특별시 | 은평구 | 진관외동 | ( - ) | ( - ) | 옛날부터 이 산의 형용이 매와 같다 하여 매봉이라 불렸다 하며 왜놈들이 이 산 정기로 장차 큰 인물이 나온다고 이산 봉우리에다 무쇠 물을 끓여 부었다고 한다.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은평구청 | 02-351-6114 | ( - ) | ( - ) | ( - ) | |||||||||||||||
1122120300 | 113800200 | 응봉 | 鷹峰 | ( - ) | - | 서울특별시 | 은평구 | 진관내동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은평구청 | 02-351-6114 | ( - ) | ( - ) | ( - ) | |||||||||||||||
1123300100,111100100,북악산,北岳山,( - ),343,서울특별시,종로구,부암동,,북악산은 서울의 주산으로 경복궁 뒤쪽에 위치하고 남산과 대칭 하여 북쪽에 있다 하여 북악이며 일명 백악 | 면악 | 공극산으로도 불리고 있다. | ||||||||||||||||||||||||||||||||||||
북악산길이 시작되는 의문 일대의 부암동은 서울에서는 보기 드문 산촌 같은 마을이다. 백석동으로 이어지는 산길 | 백사실 계곡 등 때 묻지 않은 자연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곳곳에 문화유적과 미술관 | 독특한 실내장식의 음식점 등 볼거리도 널려 있어 출사지로 꼭 한 번씩은 들리는 명소다. | ||||||||||||||||||||||||||||||||||||
부암동에서 출발하는 북악산 산행길은 의문에서 시작해 산 뒤를 휘감아 도는 북악 스카이웨이를 따라 성북구 정릉까지 6.2km 이어진다. 지금은 등산로가 나 있지만 | 조선 시대에는 도성을 지키는 순라군들이 오르내리던 길이었고 일반인에게 개방되기 전까지만 해도 와대를 경비하는 군인들만 오르내리던 길이었다. 산행길을 쉬엄쉬엄 걷다 보면 한쪽에는 북한산 보현봉 자락이 | 가을이면 북악산 단풍의 모습이 일품이다. | ||||||||||||||||||||||||||||||||||||
서울에 남은 유일한 생태 축인 서울 성곽은 옛 한양의 문화와 역사를 느낄 수 있는 공간이다. 인왕산 성곽 길에 이어 2007년 북악산 숙정문~의문 구간이 개방되면서 서울 성곽 전체를 연결해서 걸을 수 있게 되었다. 18.2km의 성곽길 중에서도 북악산 능선을 따라 이어지는 성벽 길이 인기 코스다. 오랫동안 통행이 금지되어서 성곽의 모습이 잘 보존되어 있고 전망도 빼어나다. | ||||||||||||||||||||||||||||||||||||||
. | 북악산을 뜻하는 백석(백악)동천은 북악의 아름다운 산천으로 즉 경치 좋은 곳으로 둘러싸인 곳을 말한다. 이항복의 별장지로 전해지기도 하며 백사실 계곡은 이항복의 호를 딴 백사인 것으로 구전되기도 한다. | 서울의 진산(鎭山)이라는 여러 산 중에 제일 북쪽에 있는 산으로 북악산이라 한다. | ( - ) | ( - ) | 백석동천 | 백석동천 : 조선 시대 별서가 있던 곳이며 백석동천과 더불어 월암의 각자바위가 있고 별서 터에는 연못과 육각정의 초석이 남아있으며 연못은 물이 차면 무당개구리 등이 서식한다. | 창의문 유적지, 북악 스카이웨이 팔각정 | 인근 주변에는 창의문 유적지와 북악 스카이웨이의 팔각정이 있어 서울 시내를 한눈에 볼 수 있다. | ( - ) | 종로구청 | 02-2148-1114 | ( - ) | ( - ) | ( - ) | ||||||||||||||||||||||||
1124750100 | 111400100 | 남산 | 南山 | ( - ) | 271 | 서울특별시 | 중구 | 필동 | ( - ) | ( - ) | 일명 목멱산(木覓山)이라고 불리며 마뫼(B)라고 하여 곧 남산이라는 뜻이다. 남산이 한강을 가로막아 서울의 시가지를 보호하고 있다.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중구청 | 02-3396-4114 | ( - ) | ( - ) | ( - ) | |||||||||||||||
1125050100 | 112600100 | 구능산 | ( - ) | ( - ) | 178 | 서울특별시 | 중랑구 | 신내동 | ( - ) | ( - ) | 남양주군 구리읍과 경계를 이루며 동쪽 산면에 동구릉이 있어 얻어진 지명이다.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중랑구청 | 02-2094-0114 | ( - ) | ( - ) | ( - ) | |||||||||||||||
1125070200 | 112600200 | 구릉산 | 九陵山 | ( - ) | 91 | 서울특별시 | 중랑구 | 망우제1동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중랑구청 | 02-2094-0114 | ( - ) | ( - ) | ( - ) | |||||||||||||||
1125990300 | 112600300 | 망우산 | ( - ) | ( - ) | 282 | 서울특별시 | 중랑구 | 망우산(망우리 공원)은 중랑구의 동남 측과 구리시와 경계에 걸쳐있으며, 행정구역상 서울시 중랑구 망우동, 면목동, 경기도 구리시에 남북으로 길게 있다. 망우산(망우리공원)을 중심으로 서남쪽으로 용마산과 동남쪽으로 아차산과 경계를 이루고 있으며, 지형은 남북으로 형성된 주 능선 축을 중심으로 동서방향의 부능선이 수지형으로 발달하여 계곡을 형성하고 있다. 표고는 최고 287.71m, 최저 40.2m로 표고 차는 약 247m로 다소 높은 편이며 표고별 면적 구성비는 50~250m 사이에 고르게 분포되어 있다. 경사는 면적분포를 보면 10~20% 경사지가 전체의 62.0%로 완경사지가 가장 많은 면적을 차지하고 있으나, 시설입지가 가능한 완경사지가 가장 많은 면적을 차지하고 있으나, 시설 입지가 가능한 완경사지 대부분이 묘지가 분포되어 있어 시설용지 조성이 어려운 실정이다. 식생은 망우로를 중심으로 부지의 북측은 참나무류(16.02%), 아까시나무(14.53%), 잣나무(6.93%) 등이 우점하고 있으며, 전체적으로 양호한 수림대를 형성하고 있다. 단, 망우로 남측은 전반적으로 묘지가 분포되어 있어 초지(34.99%)로 나타나고 있다. 경관은 남북방향의 능선 축을 따라 멀리 북서 측의 망우동 전경과 남동 측의 구리시 전경이 파노라마 같은 경관을 형성하고 있어 탁월한 조망 효과를 연출하고 있다. 망우산(망우리 공원)에서는 우리나라 어린이운동의 효시인 방정환, 3.1운동의 민족대표 33인 중 한 분인 오세창, 한용운, 우두 보급의 선구자로 의학자이며, 국어학자인 지석영, 임시정부 내무부서기를 역임한 문병훤, 동아일보 주필과 한국민주당 창당을 주도했던 장덕수, 제헌국회 의원이며 진보당 당수였던 조봉암 등의 묘소가 있으며, 이들 일곱 분의 애국지사 또는 유명인사 연보비가 공원 내 산책로 조성과 함께 지난 1997년 2월에 설치되었으며, 이어서 1998년 2월에 시인 박인환, 문일평, 서병호, 서동일, 오재영, 서광조, 유상규, 교육가 오긍선 등 여덟 분의 연보기가 추가로 설치되어 역사의 교육장으로 이용되고 있다. 또한, 망우동 산571번지 일대 망우산(망우리 공원) 내의 내부순환도로 5.2km를 아스콘으로 포장하여 산책로로 만들었으며, 산책로의 이름을 공모하여 1998년 5월 사색의 길로 정하고, 도시환경과 자연관찰로, 종합안내판, 나무정자, 약수터 등이 설치되어 구민과 이용자의 휴식 및 자연공원으로 많은 시민이 찾고 있다. | ( - ) | 지명에 대한 유래는 조선 태조 이성계가 한양의 도읍을 정하고 사직(社稷)의 기초를 세웠으나 사후의 명당을 찾지 못해서 이에 전국에 지관(地官)을 파견한 결과 동구릉의 건원릉 터를 만년유택(萬年幽宅)으로 지정한 후 중신 지관들과 함께 염암산 밑의 능 터를 다시 한 번 살펴보고 명당임을 확인하였다. 태조는 흡족한 마음으로 환궁하는 길에 현재의 망우산 고개 위에 이르러 잠시 쉬면서 주위의 산천 기세를 둘러 보며 그리고 건원릉 터를 바라보면서 배종(陪從)한 신하들에게 「아아, 이것으로써 오랫동안의 근심을 잊을 수 있게 되었노라」라 하여 그 후로 그 고개를 망우리 고개라고 부르게 되었다고 전해진다. | ( - ) | ( - ) | ( - ) | ( - ) | 망우 묘지공원, 관룡탑 | 1망우 묘지공원 : 항일독립운동가와 애국선열의 묘소가 모여있는 망우 묘지공원 자체가 명소.; 2관룡탑 : 41년 전부터 법인처사 부부가 쌓았다고 하는 이 탑은 아천동 한다리마을 위쪽에 있다. 넓고 얇은 돌을 켜켜이 쌓아올린 이 탑은 아래 둘레만 해도 10m는 넘어 보인다. 윗부분으로 갈수록 탑이 좁아진다. | ( - ) | 중랑구청 | 02-2094-0114 | 1994 | 시멘트 | 좋음 | ||||||||||||||||
1125080400 | 112600400 | 봉화산 | 烽火山 | ( - ) | 160 | 서울특별시 | 중랑구 | 묵제1동 | ( - ) | ( - ) | 옛날 봉화로 신호하던 산임으로 봉화산이라 부르고 있음.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중랑구청 | 02-2094-0114 | ( - ) | ( - ) | ( - ) | |||||||||||||||
1125090500,112600500,용마산,龍馬山,( - ),357,서울특별시,중랑구,면목제4동,,용마산은 아차산과 망우산의 가운데 위치하며 동쪽에 흐르는 한강과 그 주변의 자연경관을 비롯해 남양주 일원 | 구리시 | 서울 시내 | 데모산 | 관악산 | 불암산 | 수락산 | 도봉산 북한산까지 조망할 수 있어 전망대라는 느낌이 강하게 들 정도다. 능선은 경기도 구리시와 서울시 중랑구가 경계가 되고 | 환경림 조성으로 도시환경과 자연 관찰로 종합 안내판 | 정자 | 약수터 | 체육 시설이 잘 설치되어 있고 용마 폭포공원과 사가정 공원이 조성되어 있다. 봄에는 진달래 축제 | 가을의 오색 단풍으로 이용자들의 휴식처와 자연 관찰로서의 휴양림 역할을 하는 천혜의 산이다. 용마산은 중랑구 면목동에 소재하고 있으며 | 면목동은 말 목장 소재지로 의미하는 마목에서 유래 되었다고 하며 | 삼국이 한강 하류를 차지하기 위한 전략 요충지로서 신과의 유적이 있다. 산세가 아름답고 봉우리 모양이 용의 형상을 한 산봉이 보루성을 이루고 있다. 여기에서 용마산이라는 이름이 유래된 것으로 추정된다.,산에는 아기 장수 전설이 전해지는데 | 삼국시대에는 장사가 태어나면 가족을 모두 역적으로 몰아 죽이는 때가 있었다고 한다. 백제와 고구려의 경계였던 이곳에서 장사가 될 재목의 아기가 태어났는데 | 걱정하던 부모가 아기를 죽여버렸으며 그 뒤 용마봉에서 용마가 나와 다른 곳으로 날아간 데서 용마산이라는 이름이 붙었다고 한다. 또는 조선 시대 산 아래에 말 목장이 많아 용마가 태어나기를 기원하는 뜻에서 용마산이라는 이름이 생겨났다고도 한다.,아차산의 최고봉으로 예전 용마가 나왔다고 해서 용마봉이라고 함.,( - ),( - ),용마폭포공원 | 아차산 일대 보루군,1 용마폭포공원 : 용마산 정상 바로 아래 위치한 넓은 5만여 평의 옛 채석장 용지에 1991년부터 공원 조성에 착수하여 1993년 5월 용마 돌산 공원으로 개장되었으며 공원 내에는 축구장 | 테니스장 | 게이트장 | 배드민턴장과 대형 잔디광장이 있습니다. 주변 녹지대는 행도 수목이 식재되어 있고 1996년 5월부터 동양 최대의 인공폭포 조성공사가 진행되어 97년 5월부터 용마폭포공원으로 새롭게 개장하였습니다. 중심부의 용마폭포는 동양 최대의 인공 폭포로 2단 51M이고 | 양편의 천마 폭포 | 천룡 폭포는 21M이며 앞으로 대형연못 | 스케이트장 | 전망테크 | 수석 정원 | 하늘공원이 들어섭니다.; 2 아차산 일대 보루군 : 국가 지정문화재 사적 제455호(2004. 10. 27 지정) 아차산 일대 보루 군은 중랑천과 아차산 | 용마산 일대 | 3번 국도변에 남북 방향으로 집중적으로 분포하고 있는 둘레 100~300m의 소규모 보루들로서 | 출토 유물이나 축성 방법 등으로 보아 삼국시대의 유적이며 | 고구려가 5세기 후반에 한강 유역에 진입한 후 551년에 신라와 백제에 의해 한강 유역을 상실하기까지 한강유역을 중심으로 전개된 삼국의 역사상을 밝혀줄 수 있는 중요한 유적이다. 10여 개 보루는 현재 남한 내에 가장 집중적으로 분포하는 고구려 관련 유적으로 발굴을 통해 고구려 군사시설의 면모가 규명되고 있으며 | 이를 통해 고구려 관련 고고학적 성과가 기대되고 있다. 사적으로 지정된 아차산 일대 보루 군은 홍련봉 1ㆍ2보루 | 아차산 1ㆍ2ㆍ3ㆍ4ㆍ5보루 | 용마산 1ㆍ2ㆍ3ㆍ4ㆍ5ㆍ6ㆍ7보루 | 시루봉 보루 | 망우산 1보루 | 수락산 보루 등 17개 보루이며 | 이들 보루 중 중랑구 소재 보루는 용마산 5ㆍ6ㆍ7보루 | 망우산 1보루이다. |
( - ) | ( - ) | ( - ) | 중랑구청 | 02-2094-0114 | ( - ) | ( - ) | ( - ) | |||||||||||||||||||||||||||||||
1203990100 | 267100100 | 감딤산 | ( - ) | ( - ) | 308 | 부산광역시 | 기장군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기장군청 | 051-709-4000 | ( - ) | ( - ) | ( - ) | ||||||||||||||||
1203990200 | 267100200 | 개좌산 | 開佐山 | ( - ) | 449 | 부산광역시 | 기장군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기장군청 | 051-709-4000 | ( - ) | ( - ) | ( - ) | ||||||||||||||||
1203990300,267100300,거문산,巨文山,( - ),543,부산광역시,기장군,,,기장군 철마면에 있는 거문산(543m)은 여름 등산지로 권할만한 곳이다. | ||||||||||||||||||||||||||||||||||||||
산행을 시작해 1시간이면 정상에 닿을 수 있고 휴식을 포함해 3시간이면 완주할 정도로 코스가 짧은 데다 우거진 녹음이 있기 때문이다. 또 사람이 적게 다닌 곳이라 곳곳에 탐스럽게 열린 산딸기를 따 먹어 가면서 산을 오르는 즐거움을 맛볼 수 있으며 고사리 같은 산나물이 군락 이룬 자연을 구경할 수도 있다. 하산길에 수십 년 된 우리의 전통 초가를 감상할 수 있는 것도 산행 재미를 더해준다.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기장군청 | 051-709-4000 | ( - ) | ( - ) | ( - ) | ||||||||||||||||||||||||
1216040100 | 263500100 | 곽걸산 | ( - ) | ( - ) | 156 | 부산광역시 | 해운대구 | 송정동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해운대구청 | 051-749-4000 | ( - ) | ( - ) | ( - ) | |||||||||||||||
1216070200 | 263500200 | 구곡산 | 九曲山 | ( - ) | 434 | 부산광역시 | 해운대구 | 좌동 | ( - ) | ( - ) | 골짜기가 많은 산이라는 의미로 구곡산이라 함.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해운대구청 | 051-749-4000 | ( - ) | ( - ) | ( - ) | |||||||||||||||
1211250100 | 261400100 | 구덕산 | 九德山 | ( - ) | 562 | 부산광역시 | 서구 | 서대신동 | 부산광역시의 대표적인 진산중의 하나인 구덕산은 울창한 수림을 자랑하고 있다. 구덕산은 해발 562m로 북구 학장동과 사하구 당리동, 서구 서대신동의 경계에 솟아 있다. 태백산맥의 말단 금정산 줄기 끝자락에 있으며, 북동쪽으로는 엄광산에, 남서쪽으로는 시약산에 각각 이어져 있다. 산기슭에는 구덕사가 있고, 시민의 휴식공간으로도 널리 이용되고 있는 대신공원과 한때 대규모 꽃 재배단지로 유명했던 꽃마을, 구덕 수원지 등을 품고 있어 곳곳에 원예수와 꽃이 재배되어 시민들의 산책로로도 많이 이용된다. 구덕고개 밑으로는 구덕 터널이 뚫려 있다. 예전에는 이 산을 구덕산(舊德山) 또는 엄광산(嚴光山)이라고 불렀다. | 예전에는 구덕산(舊德山) 또는 엄광산(嚴光山)으로 불리었다고 한다. 문헌기록인 『동래부지(1740)』에는 구덕산의 기록은 보이지 않으나, 두송산을 구덕산으로 보는 사람도 있다. 일본기록인 『초량화집(草梁話集)』에 구덕산(舊德山) 아래 구덕사(舊德寺)라는 절이 있었는데 일본인의 침입이 심하고, 방탕한 행동을 하게 되어 20년 전에 절을 다른 곳으로 옮겨갔다는 기록이 있다. | 옛날 구한국시대 봉화를 올리던 산으로 봉화산이라 불리다 일본강점기에는 대신산이라 잠깐 불렸으며 후에 이 산에 이르러 산 아래에 아홉 덕이 마련되어 있다는 의미로 구덕산이라 불리게 되었다. | ( - ) | ( - ) | 구덕사 | ( - ) | 구덕산 기상관측소 | ( - ) | ( - ) | 서구청 | 051-240-4000 | 2007 | 화강암 | 좋음 | |||||||||||||||
1211260200 | 261400200 | 구봉산 | 龜峰山 | ( - ) | - | 부산광역시 | 서구 | 동대신동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서구청 | 051-240-4000 | ( - ) | ( - ) | ( - ) | |||||||||||||||
1212060100,265000100,금련산,金蓮山,( - ),428,부산광역시,수영구,광안4동,,( - ),( - ),옛날 왜구의 침입을 알리기 위하여 봉화를 올리던 곳이었다 하여 봉화재라 불리다가 지금은 금련산으로 개칭되어 부르고 있다.,금련산 청소년수련원,금련산 청소년수련원 : 금련산 중턱에 위치해 배산임해의 경관을 자랑하며 | 부산광역시에서 운영하는 수련장으로 학교 | 청소년단체 | 직장단체 및 시민들로부터 수련활동과 연수 | 소풍 | 자연활동 | 사생대회 등 각종 행사장소로 활용되어 인기가 높다.,( - ),( - ),( - ),( - ),1공무원교육원 → 옥천약수터 → 금련산 청소년수련소 후문; 2남천동 → 자연보호헌장 탑 → 청소년수련소 후문 → 봉수대; 비치그린아파트 → 동수영중학교 → 편백숲체험데크 → 헬기장 → 금련산 송신소 → 봉수대; 망미동 → 삼성아파트 → 얼음골 약수터 → 헬기장 → 금련산 송신소 → 봉수대 | ||||||||||||||||||||||||||||||||
수영구청 | 051-622-4251 | ( - ) | ( - ) | ( - ) | ||||||||||||||||||||||||||||||||||
1207110100 | 262300100 | 금용산 | 金湧山 | ( - ) | 150 | 부산광역시 | 부산진구 | 초읍동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부산진구청 | 051-605-4000 | ( - ) | ( - ) | ( - ) | |||||||||||||||
1207110200 | 262300200 | 금정봉 | 金井峰 | ( - ) | 399 | 부산광역시 | 부산진구 | 초읍동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부산진구청 | 051-605-4000 | ( - ) | ( - ) | ( - ) | |||||||||||||||
2810040200 | 264100100 | 금정산 | 金井山 | ( - ) | 802 | 부산광역시 | 금정구 | 부산시의 동래온천 북쪽 4km 되는 곳에 있으며, 일부는 경남 양산시에 속해 있다. 무한의 보고인 바다와 더불어 산자락은 풍요로운 삶의 터전이 되는 부산의 모산 이기도 하다. 산세는 능선이 완만하게 뻗어내려 요란스러움이 없고, 고담봉을 비롯하여 부채 바위, 나비 바위, 대륙붕 등 암장이 있으며, 능선 언저리에는 곳곳에 억새밭이 있고 날 등 어디서 보나 낙동강과 부산 시내를 내려다볼 수 있어 가슴이 후련하다. 고당봉, 의상봉, 상계봉, 서문을 연결한 날등에는 외침을 대비한 조선 숙종 29년에 쌓은 국내 최대규모의 금정산성이 자연석으로 축조되어 있고, 동쪽 산록에는 대찰 범어서와 많은 암자가 있다. 범어사는 합천 해인사, 양산 통도사, 순천 송광사, 구례 화엄사와 더불어 우리나라 5대 사찰 중의 하나로 많은 불교 역사유적을 간직한 유명한 사찰이며 인근에 금강공원과 동래온천이 있다. 산정에는 높이 3장(丈:1장은 10자) 정도의 돌이 있고 샘은 둘레가 10여 자[尺]이고 깊이가 7치[寸]로서 늘 물이 차 있으며 가뭄에도 마르지 않고 금빛이 났는데, 금색 물고기가 5가지 색의 구름을 타고 하늘에서 내려와 그 샘에서 놀았다는 전설에서 산 이름이 유래되었다고 전해진다. | ( - ) | 금정산의 이름은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의 동래현 산천조, '동래부지' 등에 의하면 산정에는 높이 3장(丈:1장은 10자) 정도의 돌이 있고 샘은 둘레가 10여 자[尺]이고 깊이가 7치[寸]로서 늘 물이 차 있으며 가뭄에도 마르지 않고 금빛이 났는데, 금색 물고기가 5가지 색의 구름을 타고 하늘에서 내려와 그 샘에서 놀았다는 전설에서 산 이름이 유래되었다고 전해진다. | 범어사, 금강 식물원, 스포원파크, 회동수원지 | ( - ) | 금정산성, 범어사 | 1금정산성 : 산 능선부에 있는 금정산성(사적 215호)은 1703년(숙종 29)에 축성하였는데 길이가 무려 17.336m로 국내에서 가장 큰 산성이다.; 2범어사 : 북동쪽 기슭에 있는 범어사는 신라 30대 문무왕 18년(678년) 의상대사가 창건한 천년고찰로 경내에는 천연기념물 176호 등나무(천연기념물 176호) 군생지와 삼국유사(보물 419호), 대웅전(보물 434호), 3층 석탑(보물 250호), 조계문(보물 1461호) 등 보물과 일주문, 당간지주, 석등, 원효암 동편과 서편의 3층 석탑, 이안눌청룡암시목판 이 외에도 수많은 문화재가 산재해 있다. | 금강공원, 금강 식물원, 해양자연사박물관 | ( - ) | 범어사 → 북문 → 고당봉 → 계명봉 → 경동아파트 입구 | 금정구청 | 051-519-4000 | ( - ) | ( - ) | ( - ) | ||||||||||||||||
1203020400,267100400,달음산,( - ),( - ),588,부산광역시,기장군,,,태백의 한 지맥이 동해를 향해 꿈틀대다 크게 용트림해 만들었을까 | 아니면 동해가 뒤집히면서 푸른 하늘과 응어리지어 그 정수를 한곳에 모아둔 것인가? 그리 높지 않으면서도 정상은 큰 바윗덩어리로 되어있어 장엄한 맛을 주는 산이다. 또 정상에 서면 동해가 짙푸른 윤기를 발산하며 넘실대고 있어 상쾌함이 등산복을 간지럽힌다. | |||||||||||||||||||||||||||||||||||||
부산에서 1시간 남짓 걸리며 산행시간도 3시간 30분에 불과해 초심자나 가족단위 등산객에게는 안성맞춤의 산이다. 특히 정상 부근의 바위는 특별한 장비가 없이도 몸의 균형과 리듬만으로 바위틈새를 타고 오를 수 있어 암벽등반의 묘미도 느끼기에 충분하다. | ||||||||||||||||||||||||||||||||||||||
이 산 초입에 있는 일광광산은 지난날 일본인들이 철광을 캐던 곳으로 지금은 폐광되어 있으나 광산마을이 그대로 있고 탄광도 거의 원형 그대로 남아있어 학생들에게는 자연학습의 장소로도 좋다. | ||||||||||||||||||||||||||||||||||||||
안부와 바위 틈새는 철쭉 군락지대로 부산근교에서는 정상 주변의 경관이 제일 아름다운 곳이다.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기장군청 | 051-709-4000 | ( - ) | ( - ) | ( - ) | ||||||||||||||||||||||||
1210060100 | 263800100 | 동매산 | 東每山 | ( - ) | 210 | 부산광역시 | 사하구 | 신평동 | ( - ) | ( - ) | 산 모양이 조그만 묘처럼 생겼다 하여 동매산이라 함.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사하구청 | 051-220-4000 | ( - ) | ( - ) | ( - ) | |||||||||||||||
1206990100 | 262600100 | 마안산 | 馬鞍山 | ( - ) | 134 | 부산광역시 | 동래구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동래구청 | 051-550-4000 | ( - ) | ( - ) | ( - ) | ||||||||||||||||
1206990200 | 262600200 | 망월산 | 望月山 | ( - ) | 549 | 부산광역시 | 동래구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동래구청 | 051-550-4000 | ( - ) | ( - ) | ( - ) | ||||||||||||||||
1211260300 | 261100100 | 박간산 | ( - ) | ( - ) | - | 부산광역시 | 중구 | 대청동 | ( - ) | ( - ) | 일정 때 일인 박간이란 사람 개인소유의 산이었다 하여 박간산이라 함.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중구청 | 02-3396-4114 | ( - ) | ( - ) | ( - ) | |||||||||||||||
1212070200 | 265000200 | 배산 | 盃山 | ( - ) | 225 | 부산광역시 | 수영구 | 망미1동 | ( - ) | ( - ) | 산형이 술잔처럼 생긴 산으로 배산 이라 한다. | 혜원정사, 온천천시민공원 | 1혜원정사 : 불교를 배워 깨달음을 찾고자 하는 이라면 반드시 닦아야 할 계(戒), 정(定), 혜(慧) 삼학(三學). 이 삼학을 이루기 위해 세워진 ‘수행의 동산’ 혜원정사(慧苑精舍)는 부산 연제구 연산동 묘봉산 기슭에 자리하고 있는 부산지역 포교의 핵심사찰이다. 푸르게 우거진 묘봉산 언덕, 나한바위가 내려다보이는 곳에 여법히 자리한 혜원정사는 채 1백 년도 되지 않은 짧은 역사에도 불구, 도심포교의 성공적 기능을 보여주는 흔치 않은 사례로 기록되고 있다. 혜원정사 팔각도는 혜원정사에 모셔져 있는 불화로, 석가의 생애를 여덟 장면으로 나누어 묘사한 팔상도이다. 혜원정사 팔상도는 제작연도가 1925년으로 근대기에 해당하는 작품이지만, 작품의 상태가 양호할 뿐 아니라 근대 한국미술에 대한 재검토와 중요성이 주목받는 시점에서, 18세기 팔상도의 전통도상 계승과 변화에 관한 연구자료라는 점에서도 의미가 있는 문화재이다.; 2온천천시민공원 : 금정산 범어사 계명봉 아래 계곡에서 발원하는 온천천은 금정, 동래, 연제 3개 구를 통과해서 약 14.1㎞를 흐르다가 수영 하수종말처리장 부근에서 수영강과 합류한다. 각종 쓰레기와 악취로 버려진 온천천을 연제구에서 1998년 공공근로사업을 통해 자연친화형 하천으로 복원하고 42,900여㎡ 둔치에는 자전거 도로를 비롯한 22종의 각종 시설물과 19,800㎡의 잔디밭, 6,600여㎡의 비탈 쪽 화단에는 수목 18종 57,000주, 야생화초 45종 214,000본을 식재 도심 속 주민 휴식공간으로 조성하였으며, 1일 평균 13,000여 명의 주민이 이용하고 있다. | ( - ) | ( - ) | ( - ) | ( - ) | ( - ) | 수영구청 | 051-622-4251 | ( - ) | ( - ) | ( - ) | |||||||||||||||
1203990500 | 267100500 | 백산 | ( - ) | ( - ) | - | 부산광역시 | 기장군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기장군청 | 051-709-4000 | ( - ) | ( - ) | ( - ) | ||||||||||||||||
1209040100 | 265300100 | 백양산 | 白楊山 | ( - ) | 642 | 부산광역시 | 사상구 | 모라동 | 백양산은 해발 642m로 부산의 등줄기 산맥인 금정 산맥의 주능선에 솟은 산이다. 부산 도심의 주요하천으로 우리나라 상수도의 시초가 된 성지곡수원지가 자리 잡고 있으며, 동천의 발원지가 된다. 백양산은 어린이 대공원 서쪽에 있으며, 원래 금용산이라 불리어 왔다. 이산의 동편은 새미산인데 이 산은 사직동 사람들은 돌작동이라고 하며 산허리에 배틀굴이라는 동굴이 있어, 임진왜란 때 연대주민이 피신하여 생명을 건진 곳으로 유명하다. 들머리인 선암사는 신라 문무왕 때 원효대사가 창건한 천년고찰이다. 창건 당시엔 낙동강이 보여 견강사(見江寺)로 불렸지만, 경내에 화랑들이 수도했던 바위인 신선암이 널리 알려지면서 선암사(仙庵寺)로 명명됐다 한다. 정상에서는 장쾌한 조망에 일순간 말문이 막힐 정도이다. 왼쪽엔 낙동강 물줄기와 황금빛 김해평야가, 오른쪽엔 서면 시가지와 북항 등 부산 전경이 한눈에 잡힌다. 오른쪽 발밑엔 성지곡수원지와 하얀 사직 주 경기장이 눈에 들어온다. 시선이 자꾸 도심보다 낙동강과 김해평야 쪽으로 쏠린다. 부산 도심과 주변의 산들도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 이 산의 동편은 새미산인데 이 산은 사직동 사람들은 돌작동이라고 하며 산허리에 배틀굴이라는 동굴이 있어, 임진왜란 때 연대주민이 피신하여 생명을 건진 곳으로 유명하다. 산행은 초읍 시립시민도서관 뒷길로 접어들어 초읍 대진아파트 왼쪽 능선에서 시작해 금정봉으로 올랐다가 능선을 타고 만남의 광장~불웅령~백양산으로 해임도로 떨어져 오른쪽으로 방향을 잡아 50여m 전방의 헬기장에서 오른쪽으로 살피면 산길이 열린다. 특히 이곳에서 산길을 찾지 못하면 이어지는 능선길을 탈 수 없는 만큼 이곳에서는 신경을 곤두세워야 한다. 그다음부터는 별 어려움 없이 산행을 계속할 수 있다. | 옛날부터 이 산의 수양버들이 유난히 흰빛을 띠어 부근의 주민들이 모두 이 산을 백양산이라 불렀다 함. | 서면 문화 테마거리, 황령산 봉수대, 화지산 배롱나무, 황령산 구상반려암 | ( - ) | ( - ) | ( - ) | ( - ) | ( - ) | 개금예비군 교장 → 선암사 → 바람고개 | 사상구청 | 051-310-4487 | 1982 | 화강암 | 좋음 | |||||||||||||||
1203990600 | 267100600 | 백운산 | 白雲山 | ( - ) | 522 | 부산광역시 | 기장군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기장군청 | 051-709-4000 | ( - ) | ( - ) | ( - ) | ||||||||||||||||
2813660600 | 264400100 | 보배산 | 寶蓋山 | ( - ) | 479 | 부산광역시 | 강서구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강서구청 | 02-2600-6114 | ( - ) | ( - ) | ( - ) | ||||||||||||||||
1215420200 | 261100200 | 복병산 | 伏兵山 | ( - ) | - | 부산광역시 | 중구 | 대청동 | ( - ) | ( - ) | 임진왜란 당시 조선의 군대가 복병하고 있던 산으로 복병산이라 함.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중구청 | 02-3396-4114 | ( - ) | ( - ) | ( - ) | |||||||||||||||
1203990700 | 267100700 | 봉대산 | ( - ) | ( - ) | 125 | 부산광역시 | 기장군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기장군청 | 051-709-4000 | ( - ) | ( - ) | ( - ) | ||||||||||||||||
1214990100 | 262000100 | 봉래산 | 蓬萊山 | ( - ) | 395 | 부산광역시 | 영도구 | 봉래산의 가장 높은 봉우리를 조 봉(祖峰)이라 하고, 그다음의 봉우리를 자봉(子峰), 그 아래의 것을 손봉(孫峰)으로 부르고 있다. 가까이 보면 세 봉우리의 구별이 잘되지 않지만 멀리서 바라보면 굽이진 봉우리의 낮아진 모습이 확연하게 드러난다. 산 전체가 원뿔꼴이며 산록의 사면은 가파른 편이다. 특히 남쪽 사면은 급경사로 바다에 거의 내리박듯 수직으로 돌입한다. 산기슭에는 기계적 풍화작용 때문에 쪼개진 바위가 점점이 흩어져 있다. 봉래산은 원래 동쪽 바다 한가운데 있어서 신선이 살고 불로초와 불사약이 있다는 상상 속의 영산이다. 봉황이 날아드는 산이라는 의미로 영도의 중심에 있다. 봉래산에는 두 가지 속설이 있다. 봉래산은 지세가 마치 아늑한 어머니의 품 같은 형상을 하고 있어 자식들인 곳 주민이 어머니 품을 떠나면 못 살게 된다는 설, 또 봉래산 산신령이 욕심이 많아 영도로 들어오는 것을 좋아하나 밖으로 떠나는 것을 싫어해 이곳 주민들이 영도를 떠나면 좋지 않다는 설이다. 이런 것들은 속설에 지나지 않고 영도 사람들은 유달리 인정이 많아 이곳에서 한평생을 사는 사람이 많다는데서 유래된 듯하다. | ( - ) | 봉래산은 원래 동쪽 바다 한가운데 있어서 신선이 살고 불로초와 불사약이 있다는 상상 속의 영산이다. 봉황이 날아드는 산이라는 의미로 영도의 중심에 있다. 봉래산에는 두 가지 속설이 있다. 봉래산은 지세가 마치 아늑한 어머니의 품 같은 형상을 하고 있어 자식들인 이곳 주민이 어머니 품을 떠나면 못 살게 된다는 설, 또 봉래산 산신령이 욕심이 많아 영도로 들어오는 것을 좋아하나 밖으로 떠나는 것을 싫어해 이곳 주민들이 영도를 떠나면 좋지 않다는 설이다. 이런 것들은 속설에 지나지 않고 영도 사람들은 유달리 인정이 많아 이곳에서 한평생을 사는 사람이 많다는데서 유래된 듯하다. | 태종대 유원지, 동삼동 패총, 영도대교 | 1태종대 유원지 : 영도 해안의 최남단에 자리한 태종대는 최고봉 250m로 중턱에는 폭 7m의 순환 관광도로가 4.3km에 걸쳐 있으며 부산의 상징인 오륙도와 일본의 대마도가 보인다. 태종대에는 남해 먼 섬들에서나 볼 수 있는 온갖 모양을 한 거대한 소나무가 절벽을 이루며 기묘한 형상을 한 곳으로 마치 해금강을 보는 듯하다. 유람선을 타고 보면 등대와 자살 바위, 신선바위, 망부석, 아치 섬, 태종대의 해안절벽, 해송 숲 등 천혜의 절경들이 태종대의 참모습을 나타내고 있어, 보는 이로 하여금 감탄을 자아내게 한다. 신라 제29대 태종무열왕이 삼국통일의 위업을 이룩한 후, 전국을 순회하던 중 이곳의 해안 절경에 심취하여, 활을 쏘며 즐겼던 곳이라 하여 태종대라 유래되었다.; 2동삼동 패총 : 영도구 동삼동 7501번지 해양대학교 진입로 우측에 있는 동삼동 패총은 1930년대 일본인에 의해 최초로 발굴된 이래 국내외 학자들에 의해 여러 차례 발굴이 시행되었으며 1979.7.26 사적 제266호로 지정되었다. 1999년도의 발굴조사에서는 아시아 최고의 신석기 유적지임을 증명하는 옹관묘, 유구 등이 출토되었으며, 2002년도에 패총전시관을 건립하여 신석기시대의 유적분포 및 생활상. 동삼동 패총의 발생·유물 분포와 특징, 발굴현장 재현 등을 연출함으로써 학생들의 역사 유적 학습장으로 유익하게 활용되고 있다.; 3 영도대교 : 1934.11.23 개통된 영도대교는 부산 최초의 연륙교로서 길이가 214.63m로 내륙 쪽의 31.30m를 도개교로 하였으며 당시 총 공사비가 360만 원이었다 한다. 개통식 이후 뭍 쪽 다리의 일부인 도개 부가 하루 7차례씩 들어 올려졌으며 이 웅장한 모습을 보기 위해 모여드는 인파들로 인하여 영도대교는 부산 제일의 명물 관광 거리로 변하게 되었다. 6·25 동란 당시 부산이 임시수도가 되었던 시절에는 전국에서 모여든 피난민들의 애절한 사연이 얽히는 무대가 되었고, 이때 영도 출신 가수 현인 선생의 「굳세어라 금순아」라는 대중가요가 부산시민의 심금을 울렸다고 한다. 영도의 인구증가 및 교통난 등으로 인하여 1966.9.1 도개식 영도대교는 그 들림기능을 멈추게 되었으나, 2013.11.27 기존 4차선을 6차선으로 복원·개통하여 부산의 명소로 옛 명성을 다시 찾고 있다. 영도대교 부근에는 당시 부산 제일의 명물이었던 도개식 영도대교의 역사적 사실을 전하기 위한 「도개식 영도대교 기념비」와 6.25 당시 피난민들의 슬픔을 달래주었던 대중가요 「굳세어라 금순아」의 시대적 배경을 담아 건립된 「현인 노래비」 등이 있어 지나는 사람들에게 아련한 향수를 느끼게 한다. | ( - ) | ( - ) | 목장원, 사격장 | ( - ) | ( - ) | 영도구청 | 051-419-4000 | ( - ) | ( - ) | ( - ) | ||||||||||||||||
1203990800 | 267100800 | 봉화산 | 烽火山 | ( - ) | - | 부산광역시 | 기장군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기장군청 | 051-709-4000 | ( - ) | ( - ) | ( - ) | ||||||||||||||||
1211990400 | 261400400 | 부민산 | ( - ) | ( - ) | - | 부산광역시 | 서구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서구청 | 051-240-4000 | ( - ) | ( - ) | ( - ) | ||||||||||||||||
1216040300 | 263500300 | 부흥봉 | ( - ) | ( - ) | 173 | 부산광역시 | 해운대구 | 송정동 | ( - ) | ( - ) | 산 형태가 부흥 세까지 형성되어 있기에 속칭으로 산 이름을 부흥봉이라 칭함.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해운대구청 | 051-749-4000 | ( - ) | ( - ) | ( - ) | |||||||||||||||
1204990100 | 262900100 | 샘물터산 | ( - ) | ( - ) | - | 부산광역시 | 남구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남구청 | 051-607-4000 | ( - ) | ( - ) | ( - ) | ||||||||||||||||
1206990300 | 262600300 | 쇠미산 | ( - ) | ( - ) | 150 | 부산광역시 | 동래구 | ( - ) | ( - ) | ( - ) | 금강공원, 금용암, 원광사의 문화재 설가설법도 | 1 금강공원 : 면적 155만 6,870㎡이다. 부산기념물 제26호로 지정되었다. 부산의 명산인 금정산(801m) 능선의 남쪽 끝에 있어 많은 시민이 찾는 공원이다. 금정산은 우거진 백 년 노송과 기암괴석 및 깎아 세운 듯한 절벽 등 산세의 수려함이 마치 작은 금강산과 같다 하여 신라 때부터 소금강이라 불렸으며 공원 이름도 여기서 유래했다. 1940년부터 금강원이라 불리다가 1965년에 공원으로 지정되었다. 케이블카 및 자연사 박물관, 민속 박물관 등 각종 볼거리와 즐길 거리가 가득하다.; 2금 용암 : 금용은 '황금 연꽃'을 뜻하며, 이름처럼 한여름을 전후하여 경내 곳곳에 피어나는 연꽃이 장관을 이룬다. 태백산맥의 끝자락인 쇠미산 허리 부분의 협소한 지역에 일부 축대를 쌓아 지었기 때문에 절터가 그다지 넓지는 않다. 예로부터 아들을 얻기를 바라는 사람들의 기도처로 널리 알려졌으며, 그 영향으로 여느 사찰과 달리 삼성각 안에 세 여인을 그린 삼신제왕탱이 걸려 있다. 염화전 앞마당에는 수령 300년이 넘는 것으로 알려진 느티나무가 있다. 금정산과 백양산을 잇는 쇠미산 등산로와 연결되어 있으며, 남쪽으로 사직동과 멀리 바다를 조망할 수 있다. 부산광역시 연제구 거제동 산13962에 있다.; 3 원광사의 문화재 설가설법도 : 부산광역시 동래구 사직동 산7412번지 원광사 대웅전에 보관된 석가설법도이다. 대웅전 석가여래삼존상 뒤에 있다. 그림의 가운데 있는 석가여래는 연화대좌 위에 결가부좌하고 있으며 오른손은 항마촉지인(降魔觸地印), 왼손은 설법인(說法印)을 취하고 있다. 본존의 양옆에는 보살살 6위가 자리 잡고 있다. 대좌의 양옆에는 가섭(迦葉)과 아난(阿難)이 서 있으며 그 각각의 옆에는 가운데 쪽을 보면서 사천왕상이 2위씩 있다. 본존의 두광(頭光) 양옆에는 16위 나한상의 상반신만을 나타내고 있다. | ( - ) | ( - ) | ( - ) | ( - ) | 북구 경계(철학로쉼터) → 산어귀전망대 → 구민의 숲 → 헬기장 → 금용암 → 원광사 | 동래구청 | 051-550-4000 | ( - ) | ( - ) | ( - ) | ||||||||||||||||
1203990900 | 267100900 | 수령산 | 繡嶺山 | ( - ) | 188 | 부산광역시 | 기장군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기장군청 | 051-709-4000 | ( - ) | ( - ) | ( - ) | ||||||||||||||||
1205990100 | 261700100 | 수정산 | 水晶山 | ( - ) | 315 | 부산광역시 | 동구 | ( - ) | ( - ) | ( - ) | 금수사, 씽씽 로드 | 1금 수사 : 두 번의 임진왜란과 정유재란을 겪은 뒤 조선의 선조는 1604년, 갑진년(선조 37년) 6월 강화교섭을 위해 사명대사에게 일본에 강화사(講和使)로 가 줄 것을 요청했다. 이를 위해 부산 구계산 자락에서 머무르던 사명대사가 물맛과 경치에 감탄해 마지않은 곳이 있으니 바로 원효종 총본산 금수사 터였다. 이후 대사를 따르던 한 제자가 이곳에 초암을 짓고 ‘금수암’이라 칭하니 오늘날 금수사가 태동한 배경에는 이와 같은 역사적 사실들이 바탕이 되어 있다. 금수사는 창건배경부터 국운과 관련된 호국사찰로 그 역할을 다해 왔다. 사명대사가 이곳에 머물다 일본으로 건너간 때에도 전란으로 잡혀간 3천5백여 명의 우리 동포들을 데리고 귀국했으며, 한국전쟁 당시에는 경내에 피난민 수용소를 건립, 민족의 아픔을 함께 나눈 곳이다.; 2 씽씽 로드 : 편백 숲, 초량천 등 자연경관과 어우러진 도심 속 숲길로 부산항을 한눈에 내다보며 편안히 걸을 수 있는 테마형 산책로와 전망대, 정자, 벤치 등 편의시설이 설치되어있다. 부산항과 산복도로를 조망하는 기존 산책로와 연계한 1시간 30분 정도의 산책 코스가 형성되어 있다. | ( - ) | ( - ) | ( - ) | ( - ) | 충혼탑 → 꽃동산 → 구봉산 봉수대 → 수정산 임도 → 수림정 → 수정5동 헬기장 → 수정산 정상 → 안창마을 → 보광사 → 아란야사 → 수정5동 산림초소 → 수정가족체육공원 → 초량천 → 금수사 | 동구청 | 051-466-7191 | ( - ) | ( - ) | ( - ) | ||||||||||||||||
1210050200 | 263800200 | 승학산 | ( - ) | ( - ) | 496 | 부산광역시 | 사하구 | 승학산은 부산의 억새 명산이다. 승학산은 부산에서 가장 서쪽에 있으며, 구덕산과 시약산의 서쪽, 엄광산의 남쪽으로 사하구 당리동의 뒷산이다. 승학산 동쪽 제석골 안부에 억새군락이 있는데, 이는 수만 평에 이르는 부산 제1의 억새밭이다. 바람 따라 일렁이는 대장관은 전국의 어느 억새 명산 못지않다. 더불어 부산의 다양한 풍경을 한눈에 조망할 수 있다. 승학산의 동쪽에는 영도, 감천, 송도 등의 항구와 바다가 펼쳐지며, 서쪽에는 서서히 강폭을 넓히는 낙동강과 드넓은 김해 벌이 그 규모를 자랑하고 남쪽에는 연대봉이 우뚝 솟았고 북쪽에는 발아래 펼쳐진 억새밭이 눈길을 사로잡는다. 승학산은 높지 않으나 그 이름처럼, 도시 속의 고고한 학과도 같은 화려함으로 등산인들의 마음을 사로잡는 산이다. 고려말 무학대사가 전국을 두루 돌아다니며 산세를 살폈는데 이곳에 오니 산세가 준엄하고 기세가 높아 마치 학이 나는 듯하여 승학산이란 이름을 붙였다는 전설이 전해 오며 흔히 동아대 뒷산이라고도 한다.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사하구청 | 051-220-4000 | ( - ) | ( - ) | ( - ) | ||||||||||||||||
1206990400 | 262600400 | 시실산 | ( - ) | ( - ) | - | 부산광역시 | 동래구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동래구청 | 051-550-4000 | ( - ) | ( - ) | ( - ) | ||||||||||||||||
1211250500 | 261400500 | 시약산 | 時藥山 | ( - ) | 391 | 부산광역시 | 서구 | 서대신동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서구청 | 051-240-4000 | ( - ) | ( - ) | ( - ) | ||||||||||||||||||
1204990200 | 262900200 | 신선대 | 神仙臺 | ( - ) | - | 부산광역시 | 남구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남구청 | 051-607-4000 | ( - ) | ( - ) | ( - ) | ||||||||||||||||
1211270600 | 261400600 | 아미산 | 峨媚山 | ( - ) | 234 | 부산광역시 | 서구 | 아미동 | 천마산의 연맥에 해당하는 아미산은 아미동 일대에 넓게 자리 잡고 있는 구릉성 산지로 아미동과 사하구(감천동)와 경계를 이룬다. 산록이 완만하여 산정의 일부를 제외하면 도시화에 따른 주택지대로 변모하였다. 아미산이란 이름은 본래 이곳의 마을을 '아미골'이라 부른 데서 비롯되나 아미골의 정확한 어원은 알 수 없다. 속설에 의하면 아미골은 움막집이란 의미의 옛말인 애막이 바뀐 것으로 이를 한자식 아미(峨眉)로 표기한 데서 비롯된다. 또, 이 산의 모습이 마치 미인의 아름다운 눈썹과 같다 하여 아미산으로 표기된 것으로 전해지기도 한다. 아미산은 부산항 개항 이후 일본인들에 의해 설치된 공동묘지의 산으로도 잘 알려졌다. 아미산은 전부터 잘 알려진 산이기는 하나 문헌에 기록된 바가 없는 작은 산이라서 한자로 어떻게 표기해야 할지 몰라 峨媚山, 峨眉山 혹은 娥眉山, 娥媚山, 蛾眉山 등으로 혼기 되어 왔는데, 요즈음은 峨嵋山으로 통일되어 사용되고 있다. | 몰운대는 16세기까지 몰운도(沒雲島)라는 섬이 있었으나, 그 후 낙동강에서 내려오는 흙과 모래가 퇴적되어 다대포와 연결된 부산의 전형적인 육계도(陸繫島)이다. 안개와 구름이 끼는 날에는 그 속에 잠겨 보이지 않는다고 하여 몰운대라고 하였다. 몰운대에는 다대포 객사(客舍)와 임진왜란 때 이순신(李舜臣) 장군이 부산포 해전에서 승전을 거둘 때 큰 공을 세우고 순절한 정운공 순의비(鄭運公殉義碑)가 있다. | 천마산 능선 일부로서 옛날부터 아미산이라고 불리고 있음. | ( - ) | ( - ) | 다대포 객사 | ( - ) | 몰운대 해안길 | ( - ) | ( - ) | 서구청 | 051-240-4000 | 정보 없음 | 화강암 | 좋음 | |||||||||||||||
1203051000 | 267101000 | 아홉산 | ( - ) | ( - ) | 361 | 부산광역시 | 기장군 | 부산의 진산 금정산 주능선을 내달리다 잠시 산성 끄트머리에 걸터앉아 동쪽인 오른편 저 멀리 회동수원지를 바라보면 바로 뒤에 올망졸망한 봉우리가 시야에 들어온다. 아홉산이다. 부산에는 원래 또 다른 아홉산이 있는데 기장군 마면 웅리 미동마을 뒷산인 아홉산이 그것. 최근 숲 체험장으로 주목받고 있다고 하면 고개를 끄떡일 사람들이 제법 있을듯하다. 그러나 금정구 회동동의 아홉산은 회동수원지에서 기장군 마면 장전리에 걸쳐 뻗은 산이다. 기장의 산으로 비교적 알려진 운봉산과 개좌산과 이웃해 능선으로 이어진다. 아홉산은 이름 그대로 아홉 개의 봉우리로 된 회동수원지 뒷산이다. 덩치는 작지만 아홉 개의 작은 봉우리를 오르내리는 재미가 쏠쏠하다. 높이가 300m대에 불과해 가볍게 몸풀기에 적당하다. 그래서 산꾼들은 아홉산 하나를 오르면 왠지 허전해 바로 옆의 운봉산이나 개좌산을 함께 오르는 경우가 많다. 무엇보다 아홉산의 자랑은 시원한 조망. 금정산 주능선과 출렁거리는 동해는 '부산에도 이런 곳이 있었나'라는 생각이 들 정도다.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기장군청 | 051-709-4000 | ( - ) | ( - ) | ( - ) | ||||||||||||||||
1211250700 | 261400700 | 엄광산 | 嚴光山 | ( - ) | 504 | 부산광역시 | 서구 | 서대신동 | 엄광산은 높이 503.9m로 부산광역시 진구에서 제법 높은 산에 속하며, 동남으로 구봉산에 이어져 있는 산이다. 이 산은 엄광산이라 불리기도 하는데 이 명칭은 산이 높아 멀리까지 볼 수 있다.는 뜻으로 일본강점기부터 불린 이름이다. 엄광산은 얼마 전까지 엄광산으로 불리던 산인데 부산광역시를 가꾸는 모임이 지난 95년 4월에 엄광산(嚴光山)이라는 이름을 찾아주고 정상표지석을 세웠다. 이 산의 정상조망 역시 뛰어나다. 동래부지 산천조에 보면 엄광산의 산봉이라는 기록으로 보아 엄광산으로 통해졌던 것이라 보인다. 이 산 정상에는 부산광역시 전체가 한눈에 들어온다. 동구, 서구, 사하구, 북구, 해운대구 일부도 한눈에 들어와 부산광역시의 숨소리가 그대로 느끼어진다. 안산암질의 암석으로 구성된 엄광산은 산정이 대체로 평탄하며, 산 정상 부근에는 잔자갈들로 된 테일러스가 발달한다. 산록은 비교적 가파른 편이다. 금정 산맥의 말단부에 해당하며, 남서쪽으로 구덕산, 나몽쪽으로는 구봉산으로 연결된다. 엄광산은 부산광역시만의 전망이 좋기로 이름나 있고 산록에는 산림이 울창하여 자연공원으로서 부산광역시민의 사랑을 받고 있다. | ( - ) | ( - ) | 냉정 샘터 | 냉정 샘터 : 냉정은 냉정 우물, 냉정 샘터 등으로 불리는데 부산광역시 사상구 주례2동 185번지에 있는 사상구 명소 중 하나이다. 냉정에 관한 역사와 유래를 자세히 알려주는 문헌기록이 많지 않은 관계로 지금까지 대개 구전으로 전해 오는 내용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냉정(冷井)은 가야에서 주례동으로 넘어오는 엄광산 산등성이의 고개 아래 자리 잡고 있는 자연 샘이다. 이 때문에 샘물 뒤쪽에 있는 가야와 주례의 교통로에 해당하는 고개를 냉정치, 즉 냉정고개라 부르게 되었으며 앞쪽의 마을 또한 냉정동으로 불리게 되었다. 이 샘물은 예로부터 냉정고개를 왕래하는 행인들의 갈증을 해소하는 귀한 쉼터였을 뿐만 아니라 부산장, 동래장, 하단장, 구포장, 김해장 등을 왕래하던 사람들에게 물 좋은 샘물로 널리 알려져 왔다. 조선 숙종(1714년)에 이중환이 지은 택리지에 보면 조선 13도 중 물이 청냉하고 감미로운 곳이 34개소가 있는데 냉정동의 물맛이 천하일품이었다고 한다. 일본 막부시대에 지방의 제후들이 다도에 심취하여 다용수를 조선국까지 와서 구해가며 가야산의 물이 좋다고 찬탄하였는데 이 가야산이 주례동 동쪽의 가야리 뒷산이며 이 산의 다용수가 바로 냉정동의 물이라고 전해 내려오고 있다. 현재는 도시로 개발되어 대규모 학교와 주택단지가 들어서면서 지하수가 오염되고 물의 성분이 달라져 주민들의 빨래터로 이용되고 있으며 사상구에서는 1999년 샘터를 새롭게 정비하고 정화사업을 펼쳐 깨끗이 단장해 놓고 있다. | ( - ) | ( - ) | ( - ) | ( - ) | ( - ) | 서구청 | 051-240-4000 | ( - ) | ( - ) | ( - ) | |||||||||||||||
1203991100 | 267101100 | 연대봉 | 煙臺峰 | ( - ) | 459 | 부산광역시 | 기장군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기장군청 | 051-709-4000 | ( - ) | ( - ) | ( - ) | ||||||||||||||||
1206990500 | 262600500 | 옥봉산 | ( - ) | ( - ) | - | 부산광역시 | 동래구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동래구청 | 051-550-4000 | ( - ) | ( - ) | ( - ) | ||||||||||||||||
1215430300 | 261100300 | 용두산 | 龍頭山 | ( - ) | 69 | 부산광역시 | 중구 | 광복동 | ( - ) | ( - ) | 복병산의 지맥으로 산형이 용의 머리처럼 생겼다 하여 용두산이라 함.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중구청 | 02-3396-4114 | ( - ) | ( - ) | ( - ) | |||||||||||||||
1204990300 | 262900300 | 우룡산 | 牛龍山 | ( - ) | - | 부산광역시 | 남구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남구청 | 051-607-4000 | ( - ) | ( - ) | ( - ) | ||||||||||||||||
1216020400 | 263500400 | 위봉 | 胃峯 | ( - ) | - | 부산광역시 | 해운대구 | 반여동 | ( - ) | ( - ) | 산형이 투구와 같이 생겼다 하여 투구주(胄)자를 써서 주봉이라 함.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해운대구청 | 051-749-4000 | ( - ) | ( - ) | ( - ) | |||||||||||||||
1202990200,264100200,윤산,輪山,( - ),317,부산광역시,금정구,,,윤산 정상에 서면 부산이 온통 산의 물결을 이룬다는 사실을 확인하게 된다. 회동수원지를 감싸고 있는 정면 한가운데 아홉산과 그 우측으로 개좌산 운봉산이 | 아홉산 왼쪽 뒤 바위봉우리가 달음산 | 그 왼쪽으로 뾰족봉인 천마산 치마산(함박산) 곰내재 | 그 뒤로 시명산이 확인된다. 부산 금정구 부곡동 서동 금사동에 걸쳐있는 나지막한 봉우리인 윤산(輪山·318m)에 오르면 광안대교가 보이는 광안리 해안가를 제외한 전 지역이 산의 물결을 이룬다. 크게 보면 부산도 일종의 대형 분지(盆地)라는 사실을 실감한다. 조선 시대 지리서인 '동국여지승람'과 1740년 판 '동래부지'에는 윤산을 '동래부의 북쪽 8리에 있으며 | 동래부의 진산(鎭山)'이라 적고 있다. 알다시피 진산은 도읍이나 성지의 뒤쪽에 있는 큰 산을 말하는데 결국 윤산이 동래의 뒤쪽 큰 산이니 진산이 되는 셈이다. 이제 궁금증은 왜 윤산으로 명명됐느냐 하는 것. 답은 간단하다. 동래 쪽에서 보면 산 모양이 수레바퀴처럼 둥글게 보여 바퀴 윤(輪)자를 빌렸다. 주민들로부터 '대머리산' '둥글산'으로 불린 것도 이러한 이유에서다. 그렇다면 윤산이 왜 구월산으로 불렸을까. 뚜렷한 답은 없지만 | 바퀴에서 연상되는 '구불다'에서 '구블다' '구을다'로 변해오다 결국 구월산으로 와전되지 않았을까 하는 것이 일반적인 추측이다. 이 때문에 지역 주민들이 원래 산 이름을 되찾아야 한다고 민원을 제기했고 | 이에 시는 타당성이 있다는 판단하에 국토지리정보원에 산 이름 변경을 요청했다. 결국 | 국토지리정보원은 지명위원회의 심의를 거쳐 윤산으로 산 이름을 복원키로 했다고 지난 2002년 7월 시에 알려와 시는 이때부터 공식적으로 윤산으로 부르고 있다.,부산 | 금정구 부곡동의 동쪽 서동의 서북쪽에 자리한 해발 318m의 구릉성 산지로 동국여지승람(1486)과 동래부지(1740)에는 윤산(윤산)으로 기록하여 동래부 뒤쪽의 큰 산이 됨. 윤산이라 한 것은 동래 쪽에서 보면 산 모양이 수레바퀴 모양으로 둥글다고 해서 | 바퀴륜(輪) | 뫼산(山)의 윤산으로 하였다고 하며 | 바퀴륜자의 바퀴가 구불다에서 구불산 | 거북이가 오는 산(구을산) | 구월산으로 와전된 것이라 한다. | |||||||||||||||||||||||||
( - ) | ( - ) | ( - ) | ( - ) | ( - ) | 윤산 임도 | 산지 습지 | 반딧불이 서식지 | 수변 산책길 | 갈맷길 | ( - ) | ( - ) | 금정구청 | 051-519-4000 | ( - ) | ( - ) | ( - ) |
데이터 샘플
판매제공처 홈페이지 | 판매 담당자 | 연락처 | 이메일 |
---|---|---|---|
www.woorimnr.com | 우림엔알 | 010-8731-1790 | jmlee@woorimnr.com |
라이선스 | 권한 | 접근권한 |
---|---|---|
Creative Commons Attribution | Copyright 2019. 우림엔알. all rights reserved | public |
품질측정검사 | 실시 | 품질측정기간 | 20191101~20191230 |
---|---|---|---|
품질측정기관 | 우림엔알 | 품질측정연락정보 | 02-421-0522 |
품질측정결과 | 정상 | 품질측정내용 | 무결성, 유효성, 정확성, 유용성, 접근성 |
제약 및 취소/환불 규정 안내 |
---|
데이터 상품은 디지털화된 상품의 특성상 반품, 취소, 환불 되지 않으나 데이터의 심각한 오류 또는, 상이한 데이터인 경우 구매자가 요구 시 환불을 진행할 수 있습니다. |
연관 데이터 상품
제공처의 다른 데이터 상품